재미있는 유머를 들었다. 그래서 여러분이 다른 친구들에게 말해 준다.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듣고는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유머도 재미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컨닝의 여섯 가지 도(道)>
도(道)란 만물에 뻗어 있어서 그 미치지 않는 바가 없으니 마침내 컨닝에도 그 마땅한 도(道)가 있는 법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감독자의 공갈에 굴하지 않으니 이를 가리켜 ‘용(勇)’이라 한다.
항상 우등생과 감독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으니 이를 가리켜 ‘지(智)’라 한다.
컨닝하다 들켜 F를 맞는 학생을 내 일처럼 불쌍히 여기니 이를 가리켜 ‘인(仁)’이라 한다.
자기는 들켜도 끝내 공범자를 불지 않으니 이를 가리켜 ‘의(義)’라 한다.
답을 보여주는 사람의 답이 정답임을 믿으니 이를 가리켜 ‘신(信)’이라 한다.
답을 보여주는 사람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지 않으니 이를 가리켜 ‘예(禮)’라 한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때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이는가? 이른바 ‘썰렁한 사람들’은 내용에 주의를 기울인다. 여섯 가지 덕목을 기억하고 그것이 컨닝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암기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정확히’ 전달한다.
재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썰렁한 사람들은 여섯 덕목이 배열되는 순서 같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덕목을 나열하는 순서와 같은 유머를 말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용은 맨 처음에 나와야 하고 예는 맨 마지막에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것도 컨닝을 하는 사람이 겪는 순서대로 비슷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왜? 그 까닭은 현비구조의 출발점인 ‘긴장 구조’에서 알 수 있다. 재미의 논리적 조건인 현비구조는 긴장 구조, 2겹 이야기, 공유 경험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긴장은 재미 최소 조건이다. 긴장이 없으면 재미도 없다. 컨닝의 여섯 가지 도를 나열할 때에도 그 순서를 잘 구성해서 듣는 사람의 긴장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컨닝하는 학생의 경험적 과정을 순서대로 따라가야 긴장이 더 커진다. 그리고 ‘예’가 상대적으로 가장 웃기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을 끝에 배치하여 축적된 긴장을 폭발시켜야 한다.
유머를 친구들에게 들려줄 때 고려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화자와 청자의 공유 경험이다. 예를 들어 보자.
1980년대 PC 운영체제로 도스를 쓰던 시절에 어떤 컴맹이 컴퓨터에 디스켓을 꽂고는 엔터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 오류 메시지가 떴다. 그걸 읽고 컴맹이 갸우뚱하며 하는 말,
“페일류어 장군이 누군데 내 A 드라이브를 읽고 있지?”
이 유머를 읽고 이해한다면 여러분은 286이나 386 컴퓨터에서 도스를 구동시켜 본 사람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요즘은 20대 청년들과 같이 그런 경험이 공유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유머를 말해 주면 이해하지도 못한다. 마찬가지로 컨닝 유머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매우 잘할지라도 컨닝 유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교 문화에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다음의 이야기도 공유 경험이 없으면 이해되지 않는 실제 상황이다.
한국의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학생이 정거장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향해 급히 달려오면서 ‘나름’ 한국어로 크게 외쳤다. “한 순간!”이라고.
그는 “Just moment”를 한국어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