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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정부의 무능, 정치권의 무책임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미시경제 전공

지진으로 미숙함 드러낸 정부

한진해운 등 경제정책도 엉망

여야 정쟁에 눈멀어 설상가상

'국민에 희망 주는 정치' 요원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니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무더위도 가고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온 모양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을 정도로 연일 후텁지근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로서는 맘 놓고 에어컨을 틀 수도 없는 처지였다. 전기세 누진제 때문이다. 이래저래 더 답답하고 짜증 나는 여름이었을 게다.

요즘 국민들에게는 날씨만큼이나 답답하고 짜증 나는 일이 하나 더 있을 것이다. 바로 무능한 정부와 무책임한 정치권을 바라보는 일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저출산과 고령화, 그로 인한 저성장과 소득의 양극화, 그리고 북핵까지 어느 하나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난제들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우리가 막대한 세금으로 정부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을 먹여 살리면서도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특권을 그들에게 부여했던 것은 이런 난제들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막중한 책무도 함께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보게 되는 것은 이 정부의 오만과 무능이며 정치권의 무책임이다.

세월호 사건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의 처리 과정을 통해 이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허둥지둥’과 ‘우왕좌왕’이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이 정부에 실망했던 것은 그 사태의 발생 책임이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사건 사고는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늘 있어 왔다. 차이는 그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그 교훈을 얼마나 제도 개선으로 연결했는가에 있다. 늘 그랬듯이 말의 성찬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국민안전을 위한 제도의 정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번 경주 지진에 대한 정부의 부실대응을 통해 또 한 번 드러났다. 그렇다고 국정의 최고책임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들었던 기억 또한 별로 없다. 지독한 오만이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가계부채 대응방안이라고 내놓은 부동산대책이나 한진해운 처리 과정 역시 경제학자인 필자가 보기에는 어딘가 나사가 한두 개쯤 풀린 미숙함으로 가득 차 있다. 가끔 그 미숙함의 ‘창의성’에 놀랄 따름이다. 출발부터 애매모호했던 ‘창조경제’의 실체를 드디어 파악하게 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굳이 일반화하자면 과거 보수정권들은 ‘비도덕적이나 유능한’, 그리고 진보정권들은 ‘도덕적이나 무능한’ 정권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이 정권은 어떻게 요약돼질까. 부정한 돈이 오간 것만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정부의 오만한 불통과 무사안일 또한 국민의 입장에서 비도덕적이기는 매한가지다.



그렇다고 눈을 정치권으로 돌려본들 별로 유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말로는 늘 “국민을 위해…”를 달고 살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소집단을 위해 ‘국민에게 위해(危害)도 마다 않는’ 집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딱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서민 생활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 도무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계부채, 취업난으로 몇 년씩 백수로 지내고 있는 아들과 딸들, 등골이 휘도록 쏟아부어야 하는 사교육비 등.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요즘의 일반 가정들은 이 중 몇 개씩을 짊어진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지난 여름의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은 언젠가는 상큼한 가을이 올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었기에 견딜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경제상황이 주는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는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국민들은 종종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이를 뒤집고자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는 오히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귀결됐던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잘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자식세대가 지게 될 것이라는 점만이라도 각성하기를 바란다.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미시경제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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