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오후부터 국회 당 대표실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는 등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지난 24일 새벽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를 주도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다. 전날 국감을 전면 거부한 데 이은 초강경 대응이다. 이 대표는 단식에 들어가면서 “의회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저는 목숨을 바칠 각오를 했다”며 “거야(巨野)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는 비상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정세균 의원이 국회의장직을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을 오늘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 의장을 ‘정세균 의원’으로 호칭하는 등 배수진까지 쳤다. 정 의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단식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누리당은 김 장관 해임안 처리를 ‘날치기’로 규정했다. 정 의장이 자신의 ‘친정’인 더불어민주당과 야합해 국회법을 무시하고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 야당 단독으로 표결 처리했다는 것이다. 실제 23일에서 24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정 의장이 의장석에서 ‘맨입’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새누리당의 공세는 더욱 세졌다. 새누리당이 공개한 정 의장 녹취록에 따르면 정 의장은 더민주 모 의원과 대화를 나누며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기간 연장)나…세월호든 뭐든 다 갖고 나오라는데 그게 안 돼. 어버이연합(청문회) 둘 중의 하나 내놓으라 했는데 안 내놔. 그냥 맨입으로 안 되는 거지”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 의원 녹취록을 들었는데 충격적”이라며 “정세균 의원은 대한민국 입법부 수장이 될 자격이 없는 분으로 더민주의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어 “명분도 없이 야당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한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말았다”면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연장과 어버이연합 청문회 개최를 해임건의안과 맞바꾸려는 정치 흥정이 이뤄지지 않으니 날치기 처리했다고 정 의원이 자기 입으로 고백한 것 아니냐”며 국회의장직 사퇴를 재차 촉구했다.
새누리당이 김 장관 해임 처리에 예상보다 초강경 대응으로 맞선 것은 정 의장 개회사 논란 때처럼 어정쩡하게 봉합하면 여소야대 국면에서 철저히 야당의 뜻대로 국회가 운영되고 내년 대선 주도권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 의장은 앞서 20대 국회 개원 당시 개회사를 통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비판하며 새누리당과 갈등을 겪었지만 추경처리 때문에 어정쩡하게 봉합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날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정 의장이 하는 걸 쭉 보면 소속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며 국회를 운영하는 것 같다”며 “(김 장관 해임건의를) 받아들이면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모든 장관은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기 힘들어 극단적으로 ‘식물대통령’ ‘식물장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 차원에서도 국정감사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기존 최고위원회를 정 의장 사퇴를 위한 비상대책위로 전환했다. 당력을 정 의장 사퇴에 집중하기 위한 차원이다. 김무성 전 대표 등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이 대표의 단식에 맞춰 정 의장 사퇴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에 돌입했다. 김 전 대표는 ‘의회주의 파괴자 정세균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정 의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퇴 등)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밝혀 새누리당과의 대치가 초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눈앞의 국감 파행은 물론 내년 예산안 처리가 시급한 상황에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 회오리가 불어닥친 셈이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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