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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특허괴물'과 공정거래법

김학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김학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지난해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특허를 손볼 시간(Time to fix Patents)’이라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역사적으로 특허가 기술 혁신의 원천이 아니었으며 현행 특허제도는 오히려 경쟁자를 배척하고 진입 장벽을 구축하는 데 악용된다는 지적이었다.

본래 특허권은 국가가 발명을 장려하기 위해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그런 면에서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추구하는 경쟁법과 특허제도는 일견 대립 관계로 인식되기도 한다. 더욱이 특허가 표준으로 채택돼 전 세계에 확산되면 보다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 기술표준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사용되는 무선인터넷(Wi-Fi), 초고속무선통신(LTE)은 널리 알려진 기술표준이다. 표준화는 유사기술 간 중복 투자를 막고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며 소비자 후생에 기여한다. 그러나 표준화가 자칫 경쟁자를 배제하는 기술 담합으로 변질되거나, 과도한 특허료를 수취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제표준화 기구는 표준특허를 획득한 기업은 특허 이용자에게 특허 사용료를 받거나 조건을 걸 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차별 없이 특허를 제공하는 프랜드(FRAND) 확약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간 표준특허권의 부당한 행사가 문제가 된 대표적인 사례는 소위 ‘특허매복’과 ‘판매금지청구’ 제소다. 특허매복은 표준 선정 이전에 관련 특허의 보유 사실을 숨기다가 표준 선정 이후 과도한 특허료를 요구하는 기만행위로 반도체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램버스 사태가 대표적이다.

램버스는 정보기술(IT)에 관한 특허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특허관리전문회사로 지난 2000년부터 10년 넘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자신들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2010년 승소를 포기하고 약 7,000억원을 주고 특허 계약을 맺었고 하이닉스는 2011년 승소 판결을 받았다. 2012년 미국 특허청은 램버스의 특허 일부에 대해 취소 결정을 내렸지만 여전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비롯한 전 세계 IT 기업은 램버스에 매년 수천억원의 특허료를 지급한다.



또한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을 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EU 집행위원회 등은 구글과 모토로라, 삼성전자와 애플이 벌인 특허 소송에서 특허권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프랜드 확약을 선언한 특허권자는 특허 이용자에게 판매금지청구권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해 공정위도 같은 취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노키아의 기업결합에 대해 자의적인 판매금지청구 제소를 금지했다.

최근에는 소위 ‘특허 덤불’과 그로 인한 특허료 중첩도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허 덤불은 제품생산에 필요한 특허가 덤불처럼 무수히 많은 상황을 지칭한다. 가령 스마트폰의 경우 업계 추산 약 25만개의 특허가 필요하고 그 중 표준특허로 선언된 것만도 1만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을 빗대어 ‘비공유지의 비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주인 없는 초원에 양치기들이 양을 끌고 와 풀을 뜯게만 할 뿐 아무도 풀을 심지 않아 결국 풀이 없어지는 ‘공유지의 비극’과 반대 개념이다.

비공유지의 비극은 특정 재산의 주인이 다수이면 이들이 그 재산의 사용을 방해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원이 과소 이용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스마트폰 등 첨단 ICT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많은 특허 보유자와 협상을 하는 바람에 특허 사용료가 높아지고 제품개발과 연구개발(R&D) 투자가 오히려 저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표준특허는 특허법, 기술표준, 그리고 경쟁법 영역의 접점에 있는 문제로 시장독점의 형성과 소비자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이다. 공정위와 같은 경쟁당국이 표준특허의 남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학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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