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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루드비히거리(Ludwigstrasse).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열리는 박람회장이 바로 근처에 있는 이 거리는 밤 11시가 다 되었는데도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관광객들로 빼곡했다. 거리 주변 술집과 음식점에는 독일 맥주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모터쇼를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몰려 온 자동차 회사 직원들과 바이어, 그리고 관광객이 어우러져 '독일의 밤'을 즐기고 있다.
인구 70만에 불과한 프랑크푸르트가 마이스(MICE·전시컨벤션) 산업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현지 고용과 내수를 창출하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는 비결이다. '박람회 천국' 프랑크푸르트는 전시장 대관으로만 벌어들이는 매출이 연간 5억4,500만 유로(한화 약 7,000억원)고 전시산업으로 고용되는 인력은 2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야외부지 활용 등 부대시설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 규모는 30억 유로(4조원)에 달한다. 호텔 등 연관산업을 감안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이런 효과를 내는 프랑크푸르트 마이스산업에 대한 투자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9세기말부터 불기 시작한 산업화 바람으로 유럽 대륙에 전시회 개최 붐이 일자, 프랑크푸르트 시 정부와 시가 위치한 헤세 주 정부는 유럽 대륙의 가운데 자리 잡은 프랑크푸르트시의 지리적 조건을 활용해 마이스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선택했다. 그때가 1907년이다.
이후 매년 파격적인 시설투자가 이뤄졌고 지금도 시설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은 현재 10개 홀에 총 36만6,637㎡에 이르는 전시면적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또다시 시설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은 마이스산업으로 올린 수익은 다시 마이스 산업 경쟁력 강화에 투입한다는 시의 원칙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박람회장을 운영하는 이리스 예글리샤 모샤지 메세프랑크푸르트그룹 수석부사장은 "박람회장 운영 주체인 메세프랑크푸르트그룹은 주주배당금을 제외한 모든 수익을 다시 전시시설 개선에 투입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까지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시의 경쟁력이라면, 프랑크푸르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경쟁력이 있다. 바로 외국에서 온 관람객을 배려한 도시디자인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도시를 처음 찾는 관람객들이 길을 헤매지 않도록 1991년 박람회장에 높이 257m의 메세 투름(타워)을 세웠다. 당시에는 유럽대륙 전역에서 가장 높았다. 시내 어느 곳에서든 전시회장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도로 건널목마다 전시장을 알려주는 안내판을 설치한 것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에서 만난 한 외국인 관광객은 "도시 전체가 박람회를 위해 디자인된 것 같은 느낌"이라며 "세계 어디를 가도 이렇게 외국인 관람객이 편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박람회가 외국 관람객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 관람객 중 52.1%가 독일 국적이다. 현지 주민들은 물론 주변 도시 주민들도 가족 단위로 박람회장을 찾는다. 모샤지 수석부사장은 "이곳에서 열리는 박람회는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는 소풍 가는 기분으로 내가 살 물건을 보러 가는 일종의 축제"라고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트 전시장 내 10만㎡에 달하는 야외공간에는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수십 대의 푸드트럭이 몰려 소시지와 피자, 맥주 등을 판매한다. 또 1~3층을 오가는 에스컬레이터 곳곳에 자리한 젤라또 매점에는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모습이 쉽게 목격된다.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회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여기에 시와 주 정부, 전시산업협회 등이 유기적 시스템 지원을 마련해 마이스산업의 경쟁력과 위상을 높였다. 사실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 외에도 전시면적만 46만6,100㎡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전시장을 갖춘 하노버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28만4,000㎡ 규모의 전시장을 보유한 쾰른 등 전시장이 각 도시에 산재해 있다. 하지만 독일전시산업협회(AUMA)와 시·주정부, 그리고 자율조직으로 움직이는 박람회 운영 전문조직 간에 상호 협력 및 지원이 이뤄진다.
AUMA는 독일 전체 마이스산업 관련 인력 양성과 법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집행기구 역할을 하면서 독일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의 질을 높인다. 시와 주 정부는 박람회장 소유주로서 마이스산업이 지역 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꾸준히 시설투자를 한다. 프랑크푸르트 전시회장을 운영하고 있는 메세프랑크푸르트그룹은 프랑크푸르트 시정부가 60%, 헤세 주정부가 4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노버 전시회장을 운영하는 도이치메세의 경우에는 하노버 시정부가 49.87%, 니더작센 주 정부가 50%를 소유하고 있다.
질케 가트만 도이치메세 대변인은 "이 같은 구조는 마이스산업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영만을 담당하는 박람회 전문조직은 시와 주 정부의 지원 속에 박람회의 품질제고에만 힘쓴다. /프랑크푸르트·하노버=양사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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