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내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글로벌 금융의 양대 축인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공급 축소(테이퍼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여기에 유럽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 부실, 하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악재까지 겹치면서 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변동성 장세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CB 내부에서 내년 3월 양적완화(QE) 종료를 앞두고 국채 등 자산매입 규모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이른바 ‘테이퍼링’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산매입 감축 규모는 한 달에 100억유로(약 12조5,000억원)가 유력하게 거론된다고 통신은 전했다. ECB는 지난해 3월 매월 600억유로어치의 채권을 사들이는 양적완화를 도입했고 올해 4월에는 이를 월 800억유로로 확대했다. ECB는 일단 “해당 사안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한 통신의 보도는 양적완화 중단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매파적 금리 인상론이 튀어나왔다. 선봉에 선 사람은 제프리 래커 미 리치먼드연방준비은행 총재다. 그는 전날 웨스트버지니아주 찰스턴에서 개최된 한 경제토론회에서 “물가와 고용 수준이 현재와 비슷하던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당시에는 지금보다 금리가 훨씬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기준금리가 1.5% 혹은 그 이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래커 총재는 금리 인상 근거로 양호한 고용을 들었다. 그는 “올해 들어 매달 18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기고 있다”며 “물가상승률도 목표치(2%)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와 고용은 연준이 통화정책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핵심 지표다.
그는 “지난 1994년에도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이었지만 연준은 금리를 올렸고 이후 물가상승률이 2%에 근접한 수준에서 유지됐다”며 선제적 인상을 주장했다. 지난달 금리 결정 당시 ‘동결’에 표를 던진 래커 총재의 이날 발언은 연준 내부에 ‘매파적 견해’가 세를 불려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특히 그의 발언은 전날 “11월 인상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은 총재의 폭탄선언과 융합반응을 일으키면서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유럽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의 부실화 가능성은 불난 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보유한 파생상품 거래 관련 신용거래 익스포저가 42조유로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이 막대한 자산의 실제 가치는 180억유로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FT는 “도이체방크의 부실화는 파생상품에서 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도이체방크의 파생상품 익스포저 문제는 파생상품에 대한 마진(증거금) 확대가 시행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마진 확대는 도이체방크가 파생상품 청산소에 지급해야 할 자금 부담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은행시장 감독당국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거래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마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향후 6개월 이내 신용부도스와프(CDS)시장에서도 마진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악재들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극심한 변동성 장세를 연출했다.
블룸버그의 주요 통화 대비 달러지수는 전날 한때 1,191원79전을 기록하며 최근 2주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고 안전자산의 대표격인 금 가격은(12월 인도분 기준) 1,269.70 달러로 3.3%나 급락했다. 이날 금값 하락폭은 2013년 이후 최대폭이다. 파운드화 가치는 최근 이틀간 1.9% 폭락했고 엔화 가치도 달러당 103엔에 근접하는 등 최근 3주 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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