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10월7일 런던 사보이극장. 오페레타 ‘유토피아, 리미티드(Utopia, Limited)’의 막이 올랐다. 오페레타(Operetta)는 이탈리아의 정통 오페라보다는 규모가 작고 희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일종의 뮤지컬. 경가극(輕歌劇·light opera)’이나 ‘코믹 오페라(comic opera)’로도 불린다. ‘유토피아, 리미티드’는 흥행에서 성공을 거뒀다. 초연 이래 245회를 공연했으니까. 빅토리아 시대 말기의 뮤지컬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흥행 기록이었다.
제작자인 도일리 카트(D‘Oyly Carte)는 1890년까지 영국 각지를 돌면서 순회공연도 가졌다. 해외 공연도 잇따랐다. 뉴욕(1894년)을 시발로 남아프리카공화국(1902)·호주와 뉴질랜드(1905)에서도 청중들의 호응이 컸다고 전해진다. 1925년에는 사보이 극장 재공연에 들어갔다. 1950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등지에서도 작품이 공연됐다. 2011년부터는 일반 판매용 비디오까지 나왔다.
영국 런던에서 초연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설리번-길버트 콤비의 유명세 덕분. 변호사 출신인 길버트(W. S. Gilbert, 1836~1911)는 대본을 쓰고 클래식 작곡가였던 설리번(Arthur Sullivan, 1842~1900)은 작곡을 맡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1871년부터 19년간 발표한 12개 작품은 ‘유토피아, 리미티드’ 이상의 흥행 실적을 거뒀다. 오페라의 변방이던 영국에서 변형 모델 격인 경가극이 발전하는 데에도 이들의 기여가 컸다. ‘유토피아, 리미티드’는 작품 성향에 대한 이견으로 결별했던 설리번-길버트 콤비의 재결합 첫 작품이어서 관객들이 몰렸다.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 공연이 이어지는 이유는 극의 내용에 있다. 빅토리아 말기 영국 사회, 특히 자본과 주식회사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았다. 극의 무대는 태평양 남쪽에 있는 가상의 섬 유토피아.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국왕은 문명화에 관심이 많았다. 맏딸 ‘자라’를 영국에 유학 보내 외국의 현인(賢人)들을 초빙한 것도 섬의 문명화와 근대화를 위해서다. 자라 공주와 함께 유토피아 섬에 당도한 6명의 외국인들은 이 극의 부제인 ‘번영의 꽃(The Flowers of Progress)’으로 대우 받는다.
유토피아섬에 찬란한 내일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번영의 꽃’들의 실제 직업은 군인에서 정치인, 경호원, 주식 중개인까지 다양했다. 스파이도 끼어 있었다. 핵심 인물은 주식 중개인이면서 회사 설립 전문가인 미스터 골드버리(Mr. Goldbury). 국왕은 물론 주민 전체가 골드버리에게 푹 빠졌다. 골드버리가 소개한 주식회사 제도가 문명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은 국왕은 연일 호화 잔치판을 벌였다.
동네 꼬마들마저 주식회사를 설립한다며 사업설명서를 들고 다니자 국왕이 골드버리에게 물었다. ‘주식회사라는 것을 만들기만 하면 영국도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골드버리는 ‘곧바로 되지는 않겠지만 머지않아 분명 그렇게 될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국왕과 공주들은 물론 섬 주민 전체가 주식회사 찬가를 불렀다. ‘놀라운 사실을 축하합시다. 새로운 발명이나 다름없는 주식회사법을 경하합시다. 62년의 법(the Joint Stock CompaniesAct of sixty-two)에 대해서도 축하를 보냅시다.’
유토피아 섬 주민들이 칭송한 ‘62년의 법’이란 영국에서 1862년 제정된 회사법(Companies Act 1862). 발기인 7인 이상이면 회사를 설립할 수 있으며 청산절차까지 내용으로 담았다. 오늘날 전세계로 퍼진 ‘주식회사법’의 원조 격이다. 영국에서 이 법이 마련되기까지는 우여곡절과 오랜 시간을 거쳤다. 무엇보다 거품 방지법의 벽이 두터웠다. 남해회사 주식투기 사건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1720년 제정된 ‘버블 방지법’은 자본의 대형화를 막았다.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영국 경제의 발목을 거품방지법이 잡고 있다는 지적이 들끓고 1825년 거품방지법 폐지법이 나왔다. 이어 은행공동출자법(1826), 상업회사법(1834), 특허회사법(1837), 회사등기법(1844), 유한책임법(1855)에 이어 제정된 게 바로 1862년 회사법.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위해 기업인에게 무한책임을 물리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자금을 모아주기 위한 회사법은 기대대로 영국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나 부작용도 낳았다. 영국 뿐 아니라 미국 철도에까지 투기 바람이 불어 초기 투자자만 거액을 챙기고 일반투자자는 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빈부 격차도 커졌다.
유토피아 섬에 이식된 주식회사법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영국보다 더 나빴다. 자본축적도 기술도 없는 가운데 펼쳐진 머니 게임의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감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섬 전체가 파탄 지경에 빠졌다. 뮤지컬 ‘유토피아 리미티드’는 가상의 섬을 통해 영국의 제도와 법률, 부유층의 호화판 파티를 풍자하고 조롱했던 것이다.
요즘이라고 사정은 나아졌을까. 뮤지컬 ‘유토피아, 리미티드’라는 제목은 다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 ’유토피아 주식회사’ 뿐 아니라 ‘낙원의 한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낙원은 없다’거나 ‘주식회사의 한계’로도 의역이 가능해 보인다. 어떤 뜻이든 빅토리아시대가 풍자한 ‘유토피아’는 무한경쟁과 승자 독식의 금융 시스템에 의해 흔들리는 오늘날 글로벌 경제와 닮은 꼴이다. 각국 정부의 역할도 점점 줄어만 간다.
뮤지컬 ‘유토피아 리미티드’가 공연되던 해에 사망한 미국의 19대 대통령 리더퍼드 헤이스(Rutherford B. Hayes·재임 1877~1881)가 남긴 말.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정부일 뿐 더 이상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없다.’
16세기를 살았던 토머스 모어는 그리스어 Ou(not)와 topos(place)를 합성해 비판적 공상소설 ‘유토피아’를 지었다. ’not place’,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꿈꿨던 이상의 세계는 정녕 없는 것일까. 세상은 왜 갈수록 혼탁하고 탐욕의 찌꺼기만 가득해지는지.
/논설위웜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18세기 초 영국을 혼란으로 몰아갔던 투기 사건. 유력자들이 라틴 아메리카와 독점 교역권을 따냈다는 과대 선전으로 투자자들을 현혹해 경기 후퇴와 수많은 파산자들을 낳은 사건이다. 윈스턴 처칠 가문을 개척한 선조들은 남해회사 투기로 거부의 반열에 오른 반면 과학자 뉴턴은 쪽박을 찼다. 요즘 가치로 20억원을 날린 뉴턴은 ‘복잡한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측량할 길이 없다’고 한탄했었다. ‘거품(bubble)’이라는 투자 용어도 남해회사 사건을 조사하던 영국 의회에 의해 처음 쓰였다. 남해회사 버블 사건은 경제사에 네덜란드 튤립 투기, 프랑스의 미시시피 주식회사 투기 사건과 더불어 자본주의 초기 3대 버블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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