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된다’는 격언은 어떻게 배를 채울지를 고민했던 보릿고개 시절은 물론 경제 성장으로 인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게 된 지금도 적용된다.
과거에는 먹는 일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국한됐지만, 이제는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 ’, ‘혼밥(혼자 먹는 밥)’, ‘집밥’ 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이 먹는 문제가 공개적인 관심사로 부각 됐다는 점에서 더욱그렇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의 언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에 대해 알려주는 정보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우리 음식의 언어’는 20년 넘게 한반도는 물론 중국·러시아·일본을 넘나들며 진짜 우리말을 찾고 연구해온 방언학 분야의 중견 국어학자 한성우 교수가 우리 음식을 먹고 우리말을 쓰는 이들에게 다양한 음식 이야기들을 쉽고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 쓴 책이다.
저자가 풀어낸 밥상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음식의 역사뿐 아니라 음식이란 매개체를 통해 사회 변화 또한 감지할 수 있다. 예컨대 한 도자기 브랜드가 1940년대부터 출시해온 밥그릇의 변천사를 언급하며 지난 70년간 그 용량이 550cc에서 260cc로 반 이상 줄었다는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독자들은 10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음식의 대명사격인 밥의 양이 반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자어일 것 같은 밥의 높임말인 진지가 고유한 우리말이고, 아이스크림을 ‘하드’라고 부르게 된 이유가 1963년 출시된 아이스크림의 이름이 ‘하드 아이스크림’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감칠맛을 내기 위해 우리 주방에서 자주 사용하는 미원과 다시다의 등장과 이름 속에 담겨 있는 뜻, 두 조미료의 대결과 결과 등 쉽게 접하지 못할 음식의 이야기들을 저자는 책이란 상을 통해 잘 차려놓았다.
음식에서 드러나는 말의 의미와 기원 등에 다루지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음식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떠한 변화 과정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촘촘하게 짚었다. 저자는 밥에 집착하던 우리의 삶이 먹을 것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을 만큼 풍요롭게 변하면서 밥이 아닌 먹을 것이 상의 주인이 되었고 밥상이 식탁으로 불리게 됐다고 진단한다.
직장인이 입맛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책에 따르면 직장인이 가장 선호하는 점심 메뉴는 지난 6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온 ‘김치찌개’를 제치고 ‘가정식 백반’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집밥’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먹을거리가 다양해졌음에도 오히려 사람들은 집에서 해 주는 밥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먹는 일이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자는 ‘혼밥’이란 신조어의 등장을 분석하면서 다 함께 밥을 먹지 못하게 된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단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누구나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면서 “그러니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고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의 재료와 그것을 가공해서 만든 음식,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우리의 다양한 말들이 이 책의 관심사인 동시에 모두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 그것을 쉽게 풀 수만 있다면 함께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아닐까. 1만6,000원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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