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서던 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이전에도 아주 생경한 일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그 횟수가 부쩍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스타가 대거 출연했음에도 대중의 외면을 받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신인들이나 연극배우를 캐스팅해서 화제를 일으키는 작품이 늘어나면서 점차 연기력을 겸비한 새로운 얼굴을 찾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공연 무대에서 활약했던 배우들을 캐스팅 하는 것은 제작사 입장에서 신인을 기용하는 것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 템포씩 끊어갈 수 있는 카메라 연기와 달리, 무대 연기는 실시간으로 관객과 대면하며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노련하게 대처해야한다. 그렇게 무대에서 쌓은 실력은 다른 장르로 갔을 때도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많은 공연 출신 배우들 가운데,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키스장인’ 조정석, ‘견고한 엘리트형 배우’ 강하늘, “가창력 괴물에서 위기의 아빠로 변신한 ” 한지상, ‘궁금한 트러블메이커’ 박은석의 활약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정석, 섬세한 연기로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 이끌어
조정석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 납뜩이 역할을 맡으면서부터다. 코믹하면서도 시종일관 너스레를 떨던 납뜩이 캐릭터는 오히려 주연보다도 더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물론 영화 출연 이전부터 조정석은 뮤지컬계에서는 티켓파워를 자랑하며 그야말로 ‘믿고 보는’ 스타 배우였다. 특히 ‘헤드윅’이라는 작품은 그에게 ‘뽀드윅’이라는 애칭을 선사하며, 뮤지컬 배우로서 뿌리 내릴 수 있는 근간이 되기도 했다.
이미 공연 쪽에서는 정상의 자리에 있는 그였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쉽게 진출했던 것은 아니다. 첫 드라마였던 ‘왓츠업’의 편성이 지연되면서 원치 않게 1년 간의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을 통해 한번 물꼬를 트자, 연이어 ‘더킹 투하츠’, ‘최고다 이순신’, 영화 ‘관상’ 등. 약 3년 사이에 드라마와 영화에서까지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바쁜 스케줄 가운데서도 틈틈이 무대에 오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를 포함해 올해는 ‘헤드윅: 뉴 메이크업’에 출연하기도 했다.
조정석 역시 “무대 위 실전에서 배운 것들이 많다. 극장 크기에 따라 적합한 발성과 연기 톤이 있는데 그것을 본능적으로 익히게 되었다. 카메라의 위치도 감각으로 익혀다. 다양한 경험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되고 두려움도 줄여주었다.”며 인터뷰를 통해 무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정석은 2015년 tvN ‘오 나의 귀신님’에서 까칠한 쉐프로 변신을 꾀했다. 귀신에 빙의한 박보영과 호흡을 맞추며, 달달한 ‘케미’를 이끌어 냈고. 1회부터 16회까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로맨틱’ 장르에서 다시 한 번 강세를 보였다.
대본을 읽어봤을 때, 자신이 생기지 않으면 아예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하는 조정석은 이번에도 탁월한 선택을 했다. 그게 바로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이다.
승부욕 강하고 까칠한 이화신 역을 맡은 조정석은 ‘조정석의 인생 작품’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장점으로 손꼽히는 손짓, 눈빛, 표정 등의 디테일 한 생활 연기가 점차 표나리(공효진)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는 이화신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지난 6일 방송된 ‘질투의 화신’ 마지막 장면에서의 눈빛 연기와 진한 키스 장면은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며, 신 스틸러에 이어 심(心) 스틸러의 자리까지 꿰찼다.
◆강하늘, ‘달의연인 보보경심 려’ 8황자 왕욱으로 여심공략
강하늘은 최근 방영중인 SBS ’달의연인 보보경심 려‘(이하 ’달의연인‘)에서 상대역인 해수(이지은 분)를 향해 ’꿀‘이 떨어지는 것 같은 달달하고 그윽한 눈빛연기를 선보이며,’고려양봉업자‘라는 애칭을 얻었다.
문무를 겸비함과 동시에 따뜻하고 다정하게 해수를 챙겨주는 8황자 왕욱 역을 맡은 강하늘은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여심을 흔들었고, 이미 여러 편의 사극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한 이준기와 함께 ‘달의 연인’을 이끄는 가장 큰 힘으로 손꼽히고 있다.
여기에 이지은을 놓고 벌이는 이준기와의 대립, 황자들 간의 황위다툼이 본격화 되면서 강하늘은 서서히 숨겨둔 야욕을 드러내면서, 깊고 묵직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강하늘은 지난 2006년 뮤지컬 ‘천상시계’로 데뷔한 이래 뮤지컬 ‘쓰릴 미’, ‘스프링 어웨이크닝’, ‘블랙메리포핀스’ 등을 통해 특유의 풋풋한 매력을 발산하며 많은 팬 층을 확보해왔다. SBS ‘상속자들’과 tvN ‘미생’을 통해 말 그대로 ‘대세’의 반열에 오른 강하늘은 이 기세를 몰아 영화 ‘스물’, ‘동주’까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며 연기력을 쌓았다.
‘동주’의 감독이었던 이준익은 한 인터뷰에서 강하늘을 캐스팅 한 이유에 대해 “강하늘이 사실 연기는 스무 살 때부터 정말 잘했다. 내면도 맑고 꾸밈이 없다. 가식도 없다. 뭘 숨기거나 속이려 하는 게 없다. 그 점이 강하늘을 선택한 이유다.”라고 말하며, 강하늘의 매력을 손꼽기도 했다.
영화 ‘스물’에서 선보인 코믹 연기부터 영화 ‘동주’의 섬세한 내면 연기를 거쳐, 현재의 ‘달의연인’ 8황자 왕욱까지.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은 강하늘은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며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을 넓히고 있다.
최근 그는 10년간의 억울한 수감생활을 견딘 후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현우’ 역할을 맡은, 영화 ‘재심(김태윤 감독)’까지 촬영을 마치며 또 한 번 변신을 예고했다.
◆한지상, 무대에서는 ‘마초남’, 드라마에서는 ‘육아 대디’로
본격적으로 한지상이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게이브’역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유다’역에 캐스팅 되면서 그야말로 ‘빵’ 떴다. 유다의 대표곡 ‘마음속의 천국(Heaven on their minds)‘에서 선보이는 폭발적인 고음과 함께, 무대를 꽉 채우는 듯한 에너지는 많은 공연 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후 그는, ‘보니앤클라이드’, ‘프랑켄슈타인’, ‘두 도시 이야기’, ‘더 데빌’ 등에서 마초 혹은 비애가 짙은 선 굵은 인물을 맡아오며 공연계에서 입지를 굳건히 다져왔다. 물론 겉에서도 드러나는 그의 뚜렷한 개성에 따른 호불호도 존재했으나, 그가 대표적인 뮤지컬 스타로 손꼽히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별안간 드라마에 캐스팅 됐다. 캐스팅 된 과정도 조금 독특하다. KBS 예능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라틴 콘셉트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을 본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 관계자가 그에게 먼저 제안을 한 것.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 연기 호흡, 앵글, 발성까지 처음부터 다시 연구해야했던 첫 드라마를 끝마친 지 1년 만에, 그는 두 번째 작품으로 다시 안방극장의 문을 두드렸다. 그것도 120회나 되는 일일드라마의 주연으로.
지난 5월 9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일일드라마 ‘워킹맘 육아대디’에서 한지상은 서울대 출신 시간강사로 후에 전업주부로 변신하는 ‘차일목’ 역을 맡았다. 무대와는 너무나 다른 캐릭터에 적지 않게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한지상은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즐거움을 맛보며 더욱 촬영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맡은 차일목 역할은 아내의 눈치만 보던 사회적으로 무능력 해보이던 인물이 점차 자신이 전업주부로 완벽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전업주부들에게 블로거를 통해 살림을 가르치는 등. 독특한 설정으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제 중, 후반부를 지나고 있는 ‘워킹맘 육아대디’를 통해 한지상은 더욱 많은 대중에게 ‘한지상’이라는 이름 석 자와 함께 ‘민호아빠’로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했으며, 무대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자신의 연기가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박은석, ‘대학로 아이돌’에서 ‘월계수 양복점’ 악역으로
박은석은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엘리펀트송’ 등에서 활약하며 일명 ‘대학로의 아이돌’이라 불릴 만큼, 출연하는 작품마다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배우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그는 ‘연기’라는 꿈을 위해 스물 두 살의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발음 교정을 위해 군대를 다녀오기도 했고, 혼자 맨땅에 헤딩하듯 직접 부딪치며 힘든 시간을 버텼다. 그때부터 ‘옥탑방 고양이’, ‘트루웨스트’, ‘햄릿’, ‘수탉들의 싸움’ 등에 출연하며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그가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통해서였다. 미스터리한 미술 선생님 ‘남건우’ 역할을 맡았던 박은석은 이 드라마에서 어딘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 연기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어 MBC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는 ‘방동배’ 역할을 맡아 뻔뻔함과 순애보를 넘나드는 반전매력을 선보였다.
기세를 몰아 박은석은 8월 27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2TV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까지 출연하면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가 맡은 ’민효상‘ 역은 미사어패럴의 외아들로, 매형 동진(이동건 분)과 경영권 대립을 하는가 하면 태양(현우 분)의 오랜 연인이었던 지연(차주영 분)에게 승부욕을 불태우는 등. 극 전반에 갈등을 야기하는 인물이다.
시종일관 뻔뻔하고 야비한 모습으로 매번 사건의 중심에서 ‘트러블메이커’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박은석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맡아온 기존의 역할들과는 차별된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한편, 그는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연극 ‘클로저’에 ‘댄’ 역으로 출연하면서 브라운관과 무대를 넘나들고 있다. 예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은석은 “드라마는 서서히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면, 연극은 순간에 집중하는 재미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드라마는 내 스스로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다면, 무대는 나를 볼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살아있다는 것에 있다.”고 말하며 두 장르에 대한 차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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