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쿠빌라이 칸은 혼인하지 않은 자식이 없다며 결정을 미룬다.
무신 집권자였던 임연에 의해 폐위됐던 원종. 1269년 몽골 황제의 도움으로 복위한 후에 열린 잔치에서 몽골 사신이 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지금 왕태자께서 이미 황제의 따님과 약혼하셨으니 국왕께서는 이제 황제의 부마 대왕의 부친이십니다.”
-고려사 세가 원종 10년(1269) 11월
이미 고려가 처음 청혼 문서를 보내기 3달 전에 몽골에서 먼저 혼담을 흘렸던 것! 그런데 이를 믿고 몽골에 청혼 문서를 두 번이나 보낸 고려 원종은 답을 받지 못한다.
결국, 태자는 39세가 되던 1274년, 극적으로 쿠빌라이 칸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를 부인으로 얻어 충렬왕으로 즉위한다. 청혼한지 4년이 지나서야 성사된 양국 황실의 첫 통혼. 과연 고려 원종과 충렬왕이 이토록 몽골 황실과의 혼인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의 청혼을 4년이나 뿌리치지 않고 붙잡았던 몽골의 속내는 또 무엇이었을까?
변발호복을 하고 몽골 황실과의 혼인을 치러 친원 세력이라는 오명을 쓴 충렬왕의 고려 국왕으로써의 새로운 면모가 공개된다.
이는 10월 9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충렬왕, 몽골 공주와 혼인하다’ 편에서 이야기한다. 충렬왕의 측근 정치 및 충렬왕 내외의 사적 관계에서 몽골과 고려의 공적 관계까지 샅샅이 살펴본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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