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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팅턴의 고양이





동화 ‘딕 헌팅턴과 그의 고양이’의 내용. ‘시골에서 태어난 천애 고아 딕 헌팅턴이 무작정 런던을 향해 걷다가 은혜를 입었다. 남루한 소년을 마차에 태워준 사람은 무역상 휴 피츠워렌. 딕은 피츠워렌의 가게에서 열심히 일해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피츠워렌의 딸은 유난히 친절하게 그를 대했다. 한 가지 고민은 쥐가 많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점. 전 재산인 1페니로 고양이를 사들여 소중히 길렀다. 무역상 주인이 아랍 지역으로 무역선을 보낼 때 배가 없는 상인과 종업원들은 상품을 위탁하고 판매 수익을 나누는 게 관례였다. 가진 게 없는 딕은 고양이를 내놓았다.’

고아 소년 딕이 애지중지하던 고양이를 교역품으로 내놓은 이유는 주인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배에 쥐가 많다는 소식을 듣고 거둬 준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고 마음 먹은 것. 이어지는 동화의 내용은 이렇다. ‘무역선은 폭풍을 만나 난파를 겨우 면하고 낯선 항구에 닿았다. 마침 아랍인들의 호의로 국왕의 연회에 초대된 선장과 선원들은 궁전에 쥐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산해진미도 큰 쥐들이 바로 먹어치웠다. 이유를 물어보니 쥐를 잡을 방도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나라는 고양이의 존재도 모르는 나라였다. 선장이 배에서 고양이를 데려와 풀어놓자마자 쥐 떼가 사라졌다. 아랍의 왕은 비싸게 고양이를 샀다. 막대한 이익을 얻고 돌아온 피츠워렌은 딕에게 고양이 값으로 받은 돈을 모두 줬다. 부자가 된 소년은 주인인 피츠워렌의 딸과 결혼하고 나중에는 런던시장까지 지니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었다.’

동화 ‘딕 휘팅턴과 그의 고양이’는 무수히 많은 판형이 있다. 스토리도 조금씩 다르다. 딕을 학대하는 주인집 마님에게 벗어나려고 가출하는 순간 첨탑의 종에서 ‘돌아가 휘팅턴, 미래의 런던시장이여’라는 소리가 울렸다는 장면이 포함된 판형도 많다. 영국의 칼럼리스트 A.N.윌슨이 쓴 ‘런던의 짧은 역사’라는 책에 따르면 비슷한 얘기가 스칸디나비아 각국과 러시아, 심지어 불교문화권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영국에서 전승을 통해 내려오던 이 이야기가 처음 글로 표시된 시기는 제임스 1세 시기인 1605년. ‘포목상이자 런던시장이었던 리처드 휘팅턴 경의 고결한 삶과 잊혀지지 않는 죽음’이라는 전승 민요가 출판을 허락받았다. 이후 19세기까지 수많은 작품이 나왔다.

요즘도 동화책에 나오는 딕 휘팅턴의 이야기는 완전한 허구가 아니다.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와 동시대를 살았던 리처드 휘팅턴(Richard Whittington)이라는 실존인물의 삶이 담겨 있다. 리처드 휘팅턴의 실제 생애와 다른 대목은 크게 두 가지. 가난한 집안이 아니라 글로스터셔의 기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런던 직물회사에 취직해 근면과 성실로 최고 갑부로 성장한 것은 소설과 같다. 1350년대 중반께 출생해 1423년 사망한 그의 행적이 확실하게 남아 있는 것은 런던 시장 취임일. 시의원과 부시장을 거쳐 1398년10월13일 런던 시장으로 뽑혔다.



여기까지라면 그저 그런 성공담으로 머물렀을 그의 일대기가 전설로 남은 이유는 자선. 소설과 달리 결혼하지 않고 미혼이었던 그는 사재를 털어 미혼모병원을 짓고 빈민가의 배수시설을 새로 깔았다. 공중화장실에서 중소상인들을 위한 길드회관 재건축과 교회·학교 건립까지…. 중세 런던의 시가지에는 그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덕분에 시민들의 절대적인 성원 속에 세 차례나 런던시장을 지냈다. 막대했던 그의 전재산은 유언에 따라 극빈자합숙소와 병원 건립에 쓰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헌팅턴의 이야기가 소설과 연극, 동화로 다시 탄생한 것은 시대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발달과 빈부 격차의 심화, 돈이 최고의 가치로 떠오르던 무한 경쟁의 시대에 따뜻한 인간정신이 성공스토리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리라. 자본의 형성과 산업화 가운데 고아와 자선가를 주제로 하는 문학작품의 수요는 커져만 갔다. 문호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1832)’도 같은 주제를 다뤘다. 19세기 후반 미국 소설가 호레이셔 엘저(Horatio Alger Jr)도 작품마다 가난한 소년의 도덕심과 마음씨 좋은 신사를 등장시켰다. ‘누더기 소년 딕(Ragged Dick)’시리즈는 1,800만부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아이들의 고사리 손마저 동원했던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사람들는 그만큼 따뜻한 온정을 희구했고, 전승과 문학작품들이 이를 구현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부럽다. 어렵게 자수성가하는 소년과 옆에서 이끌어 주는 도움의 손길이 부럽고 성공한 뒤에는 자선가로 변모하는 분위기가 부럽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맑아질까. 요원해 보인다. 고위공직자가 고가아파트를 헐값에 빌리고 초저금리로 대출받는 현실…. 법 이전에 윤리의식이 무뎌진 사회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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