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망신이 있겠나 싶다. 국회의원들 얘기다.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서 폼 잡아야 할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능욕을 당한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국정감사장에서 호통을 쳤던 본인들이야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제3자가 볼 때는 그렇다. 우선 방송인 김제동씨 발언에서부터 망신살이 뻗쳤다. “웃자고 한 얘기를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 “(국감에) 부르면 언제든지 협력할 준비가 돼 있지만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는 말에서 국회의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김씨가 실제로 영창을 갔다 왔는지 여부는 검찰에서 밝혀지겠지만 그에 상관없이 국회의원은 비아냥거리가 됐다.
어디 이뿐인가. 한국자유총연맹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반대를 위해 중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을 ‘병신육적’이라고 한 것에 대해 야당이 이를 추궁하자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회장은 “올해가 병신년이라 그렇지 누구를 병신으로 지칭한 것은 아니올시다”고 답했다. 사과 받으려다 되레 욕본 꼴이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의 해명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질의가 쏟아졌지만 사실 관계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답을 하지 않았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말만 무려 20차례나 나왔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것은 양반이다. 국회의원들은 이번 국감에서 방송사 사장이 보도본부장에게 “답변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소리까지 들어야만 했다.
단지 말뿐만이 아니다. 필요한 증인조차 불러세우지 못해 국감 무용론까지 거셌다. 압권은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이다. 3번이나 증인출석을 요구받았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6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 휴직 후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단다. 홍 전 산업은행장은 “산은 회장으로 있을 때 서별관회의에 참석해보니 이미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금액과 방향이 다 정해져 있더라”라며 서별관회의의 문제점을 폭로했다. 그러곤 4조2,000억원을 투자해 얻은 AIIB 부총재 자리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그는 이번 국정감사에 반드시 불러 세웠어야 할 인물이었다.
국감에 불출석하면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행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에 불응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13조에 규정한 ‘국회모욕의 죄’다. 하지만 동행명령장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알 수도 없고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측으로부터 개인 정보에 해당돼 밝히기 곤란하다는 답변만 들었다니 정말 국회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여야가 합의한 증인인데도 이 모양이다. 그러니 의견이 갈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미르·K스포츠재단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차은택씨를 국감장에 세우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눈에 띈 국감스타도 없었다.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인 만큼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지만 하나같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국감NGO모니터단이 모니터링을 시행한 지 18년 만에 처음으로 이번 국감에 ‘F학점’을 준 것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가 개혁안을 확정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보고하면서 특권 내려놓기가 가시화한 분위기다. 사실상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철폐하고 입법·특별활동비를 수당에 통합해 15% 정도 월급을 줄이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시급한 게 국회 권위 세우기가 아닌가 싶다. 특권은 내려놓되 국회의 무서움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회의장에서 소란피우는 국회의원에 대한 퇴장명령 등 자체개혁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여야가 합의했는데도 증인이 이유 없이 국감장에 나오지 않고 어디로 동행명령장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입법부로서의 권위를 되찾지 못하면 ‘갓 쓰고 망신당한다’는 속담처럼 금배지 달고 망신당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용택 논설위원 yt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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