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바람에 유럽연합(EU)이 추진하고 있는 거대 자유무역협정들이 잇따라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발효가 확실시되던 캐나다와의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TA)은 물론 미국과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까지 암초에 부딪히면서 EU 체제가 국제협정 체결 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와 캐나다 간 CETA 체결을 논의하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통상장관은 전날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프리랜드 장관은 CETA 체결을 반대하는 벨기에의 왈로니아에 머물며 현지 지방정부와 담판에 나섰지만 “협상 불가능”을 선언하며 회담을 박차고 나왔다.
이날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이 프리랜드 장관과 폴 마그네트 왈로니아 지방정부 총리와 개별 면담을 하며 CETA의 ‘심폐소생술’에 나섰지만 협상 진전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프리랜드 장관은 슐츠 의장과 면담 직후 “이제 공은 유럽 측 코트에 있다”면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EU를 방문하는 27일 CETA에 서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U와 캐나다 간 CETA는 2014년에 끝낸 협상 결과에 28개 EU 회원국 정상 모두가 동의하면서 27일께 최종 서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수입 농산물 범람, 캐나다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 등을 우려한 벨기에 왈로니아 지방정부가 반대하고 나서자 벨기에 연방정부도 CETA를 찬성할 수 없게 됐다. 현 EU 체제 아래에서 무역협정은 28개 회원국 모두가 찬성하는 ‘만장일치’가 이뤄져야만 발효될 수 있다.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낼 EU와 미국 간 TTIP도 타결 가능성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내년 4월과 9월에 각각 총선을 앞둔 프랑스·독일이 보호무역주의에 동조하는 유권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TTIP 협상 재개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끝난 EU 정상회의에서 “미국 새 행정부와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며 “올해 안에는 TTIP가 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올랑드 대통령의 주장처럼 TTIP 협상이 해를 넘겨 새 행정부와 진행될 경우 협정은 엎어질 공산이 크다. TTIP 협상에 적극적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달리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EU와의 무역협정 체결을 반대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다른 회원국들이 연일 엇박자를 내면서 ‘하나의 유럽’을 외치는 EU 체제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2014년 EU 통상장관들이 이미 협상을 끝낸 EU·캐나다 CETA마저 벨기에의 한 지방정부 반대로 엎어질 정도라면 앞으로 어떠한 중요 의사결정도 내리기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늦어도 내년 3월 말부터 시작될 영국의 EU 탈퇴 협상도 유럽의회 비준을 통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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