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줄곧 개헌에 부정적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도 임기 내 완수를 목표로,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자신이 직접 주도하겠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개헌 블랙홀’을 꺼내며 정치권의 숱한 개헌 주장을 차단해왔다. 경제살리기에 주력해야 할 시기에 정치권이 개헌으로 정쟁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개헌 불가’에 쐐기를 박은 것은 지난 2014년 10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상하이 개헌론’ 때였다. 당시 당 대표 자격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했던 김 전 대표가 개헌을 주장했지만 박 대통령의 압박에 하루 만에 사과하기도 했다.
불과 6개월 전인 올 4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도 “경제를 살리고 나서 (개헌) 공감대를 형성해야지 지금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며 개헌론에 선을 그었다.
이랬던 박 대통령이 입장을 선회하며 전격적으로 개헌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정치권의 ‘압박’을 정면돌파하고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우선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의 개헌 압박이 어느 때보다 거셌던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헌 불씨를 붙인 후 잠룡들도 개헌 이슈 선점에 몰두했다. 여야가 내년 대선을 목표로 정쟁에만 몰두하자 지금을 국면전환의 시기로 봤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24일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우리 정치는 대통령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체제로 인해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가 일상이 돼버렸다”며 현 정치권을 꼬집었다.
최근 최순실씨 비선 실세 의혹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거취 문제로 사실상 국정이 마비될 위기에 놓이자 이를 돌파하기 위한 카드라는 관측도 나온다. 개헌이 현안 이슈를 집어삼킬 파급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 수석과 최순실씨 논란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민심 이반이 심하고 야권의 잇따른 의혹 제기로 국정동력이 급속히 떨어지자 국면전환을 노렸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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