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는 차이나머니에 대해 각국이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국제질서를 무시한 중국 정부의 패권적 팽창정책과 중국 자본에 대한 반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보호주의 등이 맞물린 결과다. 일본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미국 부동산 등 전 세계 자산을 포식하자 각국 정부가 일본 경계령을 내렸던 지난 1980년대 초반의 데자뷔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호주 4개 농장 부호가 결성한 BBHO컨소시엄은 호주 최대 농업기업인 키드먼농장 인수에 나서기로 했다. BBHO컨소시엄은 총 3억8,600만호주달러(약 3,330억원)를 마련해 키드먼농장 지분 100%를 매입할 계획이다. 이 농장은 중국 최대 부동산그룹인 상하이CRED가 호주 광산 부호인 지나 라인하트와 손잡고 3억6,500만 호주달러의 인수금액을 제시해놓은 상태다.
키드먼농장 인수에 대형 농장주들이 함께 나선 것은 호주 기업을 사들이려는 중국 자본에 대한 반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서 호주 언론들은 중국 기업의 키드먼 인수시도에 대해 “중국인들의 토지에 대한 욕구가 상상을 초월한다”며 “더 많은 농지를 확보해 자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려는 야심 찬 계획의 출발점”이라고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호주에서 중국 자본의 M&A에 제동이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중국국가전략망공사(SGCC)가 호주 전력유통 업체 오스그리드 인수에 나섰지만 결국 국내 펀드 2곳에 밀려 무산된 바 있다. 펀드들의 오스그리드 인수금액은 206억호주달러로 SGCC가 제시한 251억달러에 크게 못 미쳤다. 스콧 모리슨 호주 재무장관은 “주요 인프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스그리드를 중국에 장기 임대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에만 37곳의 기업이 중국 자본에 넘어간 독일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차이나머니의 M&A를 막기 위한 규제에 나섰다. 2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경제부는 지난 5월 체결된 중국계 펀드와 독일 반도체장비 공급업체 아익스트론 간 인수 합의에 대한 승인을 철회하고 재검토에 돌입했다. 경제부는 중국 푸젠 그랜드 칩 인베스트먼트의 아익스트론 인수가 “공공의 질서를 해칠 수 있다”며 지난 21일 회사 측에 이 같은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결정은 20일 중국 기업들의 M&A를 제한하기 위해 경제부가 발표한 규제안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규제안은 독일 기업 지분 25% 이상을 매각하는 계약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정부에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며 심사 대상은 △인수 대상이 독일 국영기업인 경우 △독일 정부가 기술개발에 투자한 기업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 등이다. 자국의 인프라와 핵심 기술 분야가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중국 자본을 대체할 백기사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시장정보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1~9월 중국 글로벌 M&A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68% 늘어난 1,739억달러(약 193조원)로 1~9월 기준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앞섰다. 주요 M&A 대상에는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는 에너지·농업 등 인프라 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중국 자본 외에는 이들 분야의 기업을 거금을 주고 선뜻 사들일 해외 자본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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