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 중인 드라마가 거의 ‘생방’ 촬영이라서 확인을 못하고 있는데 관객수가 이렇게 빨리 올라가서 너무 신기해요. 일 년 전에 찍었던 작품이라서 좀 잊고 있기도 했거든요.”
지난 13일 개봉 이후 관객 500만명에 근접하며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럭키’에서 무기력하지만 능청스러운 무명 배우 재성 역을 연기한 이준(28·사진)을 지난 25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개봉이 1년 가량 늦춰졌고, ‘럭키’의 이 같은 흥행을 예견한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동안 영화 ‘배우는 배우다’, 드라마 ‘갑동이’ 등 소위 말하는 ‘센’ 작품에 주로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준이 반 백수인 무명 배우 역을 택한 것도 의외였다. 8년 가까이 되는 연기 경력에서 변신을 시도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시나리오를 봤을 때 웃음이 ‘빵’하고 터졌어요. 인터넷에 올라오는 웃긴 걸 봐도 전 잘 안 웃은 편인데 글로만 보고도 웃긴 건 정말 웃긴 것이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열정과 노력이 넘치는 이준에게 무기력한 재성은 딱히 와 닿지 않는 캐릭터였다. 이 때문에 한 장면을 찍을 때마다 여러 가지 버전을 감독에게 선보이면서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무기력한 캐릭터다 보니 맨날 누워있어서 머리도 뒤 아예 눌려있을 것도 같아서 머리도 그렇게 만들어 보고 손톱도 손질 안 할 것 같아서 때가 끼는 대로 둬 보고, 첫 장면에 등장한 지저분한 민소매 티도 제가 직접 몇 달 동안 입고 땀 냄새를 묻혔어요. 목매는 신에서도 이렇게 목을 맬까 저렇게 목을 맬까, 얘는 진짜 죽을 의지도 없는 아이인데 라는 생각에 그냥 이것저것 보여드렸고, 어떻게 생각한 버전이 실제로 극장에 걸렸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의 ‘피 땀 눈물’이 밴 민소매 티셔츠는 팬 미팅 때 한 팬에게 선물했다. 이에 대해 그는 당시에는 정말 죄송했지만 영화가 잘 되고 있으니 팬분께 조금 덜 미안한 것 아니냐며 발랄함과 엉뚱함을 드러냈다.
이준은 킬러 형욱 역을 맡은 유해진에 대해서도 나름의 생각을 밝혔다. “킬러 형욱 역을 누가 할지 정말 궁금했는데 유해진 형이 한다고 했을 때 정말 싱크로율이 100%다,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돌그룹 ‘엠블랙’ 출신의 이른바 ‘연기돌’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이준이지만 ‘무명 배우’로서의 자괴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의외의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닌자 어쌔신’을 찍고 호평이 많아서 작품이 많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왜 안 들어오지?’ 하면서 몇 년을 더 보내다가 김기덕 감독님을 만났어요. 오디션도 안 보고 ‘진짜 해보고 싶냐’라고만 물으시고 ‘진짜 해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더니 바로 캐스팅하셨고, 이후 ‘갑동이’ 등을 찍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죠.”/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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