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파문으로 모든 국정이 마비된 가운데 야당은 물론 집권 여당 원로들도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여당의 속내는 청와대 인적쇄신의 폭을 먼저 지켜보자는 것이지만, 당 원로들이 나서서 거국내각 필요성을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나라의 체면이 엉망이 됐다”며 “대통령의 탈당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지엽적인 얘기가 될 뿐이고 결국에는 거국내각 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시점에서 하루라도 빨리 거국내각을 통해 국정운영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스스로 임기 내 개헌을 말했기 때문에 자신은 ‘개헌 관리자’로만 역할을 하던지, 아니면 여야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야 전 국민이 우울해하는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타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박계 재선의원도 “청와대 인적쇄신으로도 성난 민심을 막지 못하면 책임총리제를 도입하고 그래도 안 되면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는 전날 “신뢰를 잃은 리더십은 유지가 안 된다”며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대통령의 탈당이 사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면 탈당도 고려할 수 있지만 청와대 비서진 개편과 내각 총사퇴 후 거국중립내각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 이날 전원 사퇴를 내걸고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 쇄신을 촉구했다. 이르면 이번주 말이나 다음주 초로 예상되는 청와대 개편을 앞두고 ‘문고리 3인방’과 최씨에 부역한 인물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청와대 인적 쇄신의 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통령께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전면 인적 쇄신을 요구한 만큼 이것을 대통령이 안 하면 당 지도부가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를 불문하고 거국내각을 조기에 구성하라는 압박에 시간을 벌고,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정현 대표 등 지도부 일괄사퇴 요구에 맞서 타이밍을 찾으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더구나 아무리 비상시국이라고 하더라도 지도부가 전원 사퇴해 버리면 뒷수습을 할 주체들이 없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거국내각 여론이 확산되는 데 대해 당 지도부는 대통령이 결단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직접 언급은 피했다. 정 원내대표는 “(거국 중립내각 구성은) 그건 대통령 결정 사항”이라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금은 청와대 인적 쇄신이 먼저”라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인적 쇄신으로도 반발여론을 잠재우지 못하면 이후에는 단계적으로 책임총리를 도입하거나 거국내각까지 가야 한다는 구상인 것이다.
김재원 정무수석은 이날 국회에서 “(야당이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주장하는 데 대해) 그런 다양한 의견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미 대통령께 많이 보고를 드렸다”고 말해 박 대통령의 기류는 당장 부정적일지라도, 여론 변화에 따라서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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