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라는 것은 특이하다. 우리가 만들어온 수많은 길은 그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존재한다. 길에서 자거나 머무는 사람은 보통 정상적이지 않다. 인류는 지금까지 될 수 있으면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길들을 만들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새 책 ‘미로(美路), 길은 인문학’은 기존의 도구로서의 길 개념이 아니라 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토목공학 전문가인 저자 김재성 동명기술공단 부사장은 길을 내는 것이 직업이다. 그동안 수많은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는 일을 해왔다. 저자는 공학이라는 자신의 일과 함께 ‘인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고 한다.
즉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모든 공간은 ‘길’과 ‘방’으로 구분된다. 방은 머무르는 공간이고 길은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다. 길은 방과 방을 연결한다. 길은 사람이나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외에 상하수도, 전선, 가스 파이프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점은 길을 물리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길의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나왔다. “길은 땅에만 있지 않다. 바람이 흐르는 길도 길이고 우리가 카톡을 주고 받는 비트 등도 마찬가지다.”
저자처럼 인문학적 관점에서 길을 한번 보자. 길은 단순히 공간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공간을 확장한다. ‘생각의 길’에서 저자는 생각이 모여있는 장소인 도서관의 역사를 따라가고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동화의 세계를 탐구한다. 또 서양의 직선적 세계관과 동양의 순환적 세계관을 설명한다. 인류의 발전은 곧 다양한 방식으로의 길 확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길은 더 길어지고 넓어졌으며 때로는 깊어졌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물리적인 길도 다룬다. 그는 수로·운하·바닷길 등 물길과 우리나라의 옛길을 정리하고, 길의 경계를 허문 터널과 길 사이의 틈을 메운 다리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한다. “인간은 길을 만드는 동물이고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는 그 길을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3만2,000원
/최수문기자 chsm@sed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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