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당적을 버리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고 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요구가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이 내치에서 손을 떼고 여야가 합의로 추천한 새 총리가 국정을 주도하는 거국내각 외에 다른 위기타개책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도 “거국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하는 거국중립내각이 과연 현실적 대안인지는 의문이다. 여야 등 정파 사이의 내각 분배가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펴나갈 수 있는 방안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의 정치사에서 각 정파가 이해관계에 따라 충돌하며 온 국민이 쪼개져 싸우는 장면을 수없이 봐왔다. 지난 총선 이후 협치 논의가 잠시 유행을 탔지만 그것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 소극(笑劇)이었는지도 경험했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논의과정과 그로 인한 정치혼란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일선 퇴진이 진정 국민의 뜻이라면 총리에게 국정운영의 상당 부분을 맡기는 ‘책임총리제’가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황교안 총리가 “그렇게 (거국중립내각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일이, 국정이 잘 진행되겠는가”라고 한 것도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상황을 이렇게까지 끌고 온 데 대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 정국 혼란을 하루빨리 수습하고 나아가 자신을 지지해온 국민 모두를 살릴 길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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