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다섯 군데 대기업이 핵심 고객입니다. 금형설계까지 완성했고요. 지금 투자유치 중입니다.”
“그 다섯 곳이 구매를 결정했나요?”
“개발 완료되면 찾아가려고요. 두 군데는 직접 만났는데 완료되면 가져와 보라고 하더군요.”
“만약 그쪽에서 구매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구매할 겁니다. 안 되면 해외로 나가야죠.”
대부분, 아니 모든 창업자는 자신의 제품이 고객에게 꼭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확신이 없었다면 창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스타트업은 창업 수년 내 절반 이상이 문을 닫는다. 부인할 수 없는 통계다. 물론 자사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엇일까. 자신감, 긍정적 사고, 창업경진대회 수상, 제품이 나오면 가져와 보라고 했던 잠재고객들일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스타트업은 주요 고객이 다섯 군데 대기업이라고 했다.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구입하지 않으면 끝이다. 창업자 말대로 해외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들도 시장조사를 하긴 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시장조사를 표면적으로 진행하고 자기편향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나오면 살펴보겠다’고 고객이 응답하면 ‘와우, 멋진데요. 가져오면 살게요’로 받아들인다. 사실 이런 대답은 예의상 하는 빈말일 가능성이 높다. 제품이 출시되면 한번 보기는 하겠다는 것이다. 굳이 안 볼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또 부정적으로 말해 인심을 잃고 싶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창업 프로세스는 ‘사업 아이디어→시장조사→제품개발→마케팅’ 순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마케팅을 뒤에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제품 출시 후 마케팅을 시작했는데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이었다면 마케팅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고객 확보를 사업 아이디어 단계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개발하려는 제품이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지, 제품화됐을 때 구매의사가 있는지 만들기 전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제품이 없어도 일단 대상 고객을 만날 수 있다. 제품이 해결하고자 하는 고객 불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제품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고객은 ‘언제 출시되는지’ ‘출시되면 꼭 구입할 테니 알려달라’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런 고객들을 미리 예비고객 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다. 또 10명을 만나 물어봤을 때 적극호응 고객이 얼마나 되는지도 사업성 확인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다섯 군데 대기업이 핵심 고객인 경우 이들의 구매의사를 확인한 후 제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활동을 ‘고객개발(customer development)’이라고 부른다. 고객개발은 고객을 만들어가는 활동이다. 스타트업은 제품개발보다 고객개발을 먼저 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 수 있고 나오자마자 판매할 수 있다. /sungjucho@business.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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