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과테말라는 100여개의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우리 동포들이 5,000명이나 살고 있는 국가이다. 고대 마야문명의 중심지로 대한민국보다 조금 더 큰 국토에 1,700만명이 살고 있으며 마야 원주민의 비중이 50%에 이른다. 이곳에 우리 기업들이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였다. 한때는 우리 기업 200여개가 진출했고 교민의 수는 1만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현재도 우리 기업들은 5만명 이상을 고용하고 과테말라 섬유 의류제품 수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등 과테말라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나라와 과테말라 간의 경제협력 관계는 2000년 중반을 기점으로 다소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2004년 5억5,000만달러에 달했던 우리나라의 대(對)과테말라 수출은 현재에는 3억달러대로 후퇴했다.
우리 섬유업계는 1990년대 초부터 미국 시장에 대한 근접성과 미국의 특혜관세 혜택을 향유하기 위해 과테말라에 대거 진출했다. 이들은 한국산 섬유사와 직물 등을 수입하면서 우리나라의 대과테말라 수출을 증가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중미·도미니카공화국·미국 FTA(DR-CAFTA)에 따른 원산지 규정 강화, 중국산 섬유제품의 경쟁력 강화, 진출기업들의 현지화 진전으로 이들 기업들의 한국산 원자재 수입은 감소하고 있다.
섬유 원자재의 수출이 감소하는 가운데 자동차·철강·화학제품·타이어 등이 새롭게 대과테말라 수출 주력품목으로 부상하며 섬유류 수출 감소를 상쇄했으나, 최근에는 자동차를 제외한 대부분 품목들이 중국산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리면서 수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에 3,500만달러나 수출했던 철강제품은 올해에는 9월까지 350만달러 수출에 그쳤다. 재생타이어를 수입하는 교포 무역인은 중국산 신품 타이어가 국산 재생타이어보다 더 싸게 수입돼 경쟁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교역 성장세 둔화, 특히 수출주력산업에서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품질 수준까지 높아진 중국산 제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 제품들의 시장을 급격히 잠식하고 있다. 이러한 수출경쟁력 약화현상은 구조적인 문제로 우리 산업의 근본적 구조 및 체질 개선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테말라를 비롯한 중미 지역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현재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한·중미 FTA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와 과테말라 등 중미 6개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FTA 협상을 진행해왔으며 조만간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의 주력수출상품이 자동차·전자제품·철강·화학제품 등 공산품인 데 반해 과테말라 등 중미 지역의 주요 수출품은 사탕수수 원당, 커피, 바나나 등 우리 입장에서 비교적 민감도가 낮은 농산물이어서 양 지역은 국내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FTA 체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중미 FTA는 중미 지역에서 우리 상품들이 중국산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철강제품이나 타이어 등 품목에 따라 5∼15%에 달하는 관세가 빠른 시일 내에 철폐된다면 그간 중국산에 밀려 주력제품의 수출이 감소하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테말라 및 중미 국가들이 미국·멕시코 및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과 FTA를 체결한 점을 고려할 때, 이들 국가 제품들에 대한 상대적 열위를 극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FTA가 체결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수출을 늘리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면 FTA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공관장으로 부임한 후 유망한 우리 중소기업들에 과테말라 시장을 소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중소기업 수출 지원기관들에 시장개척단이나 무역사절단의 파견을 늘려 주도록 요청했고, 이에 호응해 올해에는 지난해에 비해 많은 우리 기업들이 과테말라를 방문했다. 고무적인 사실은 별다른 기대 없이 방문했던 과테말라에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두고, 과테말라 시장의 가능성을 새롭게 확인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말 이곳을 방문한 중남미 전력기자재 사절단은 과테말라 정부 및 송배전 사업자들과 전력산업포럼과 상담회를 개최해 정부와 업계뿐만 아니라 언론으로부터도 큰 관심을 받았으며, 기대 이상의 상담 및 계약 성과를 거뒀다.
한·중미 FTA의 타결을 앞두고 과테말라 등 중미 국가들의 우리나라와 교역 및 경제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미시장은 규모가 큰 시장은 아니나 그 어느 지역보다 FTA의 효과가 크게 기대되는 틈새시장이다. 현재 우리 수출산업과 중소기업들이 처해 있는 어려운 현실에서 중미의 틈새시장에 대한 관심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이곳 과테말라에서 한·중미 FTA 체결을 기념하는 한국상품종합전시회를 개최하고, 중미 지역에 제2의 한국 붐을 일으키기를 기대해본다.
이운호 주과테말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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