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과정에서 거액을 낸 대기업 핵심 관계자를 소환하고 본사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대(對)기업 수사에 강도를 높이고 있다. 롯데·삼성·현대자동차 등으로 조사범위를 넓히고 있어 앞으로 각 그룹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대외협력단 사무실을 비롯해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집무실, 한국마사회·대한승마협회 사무실 등 9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수사관 등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 개인 다이어리, 승마협회 업무 추진 내역, 지원비 집행 실적 등을 확보했다. 검찰이 지난 2007년 삼성특검 이후 9년 만에 압수수색 카드를 꺼낸 것은 삼성과 승마협회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씨와 그의 딸 정유라(20)씨에게 불법자금 지원을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들 모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 비덱스포츠에 280만유로(약 35억원)를 특혜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박 사장이 직접 독일로 건너가 최씨와 구체적인 지원금액 등을 협의했다는 의혹도 커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룹 승계구도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삼성이 최씨 모녀에게 거액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얘기다. 비선 실세에 대한 로비를 발판으로 청와대와 국민연금을 움직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검찰도 삼성이 박근혜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인 최씨에게 사업상 모종의 혜택을 기대하고 사실상의 대가성 자금을 건넨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또 압수수색 등 수사 과정에서 얻은 자료를 분석해 이미 드러난 것 외에 이면 지원이 더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또 검찰은 이날 박모 현대자동차 부사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그를 상대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기금 출연을 요청한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0월 설립된 미르재단과 이듬해 1월 세워진 K스포츠재단에 총 128억원을 냈다. 두 재단에 출연한 금액 규모로는 삼성(204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검찰은 현대자동차가 최씨 측근이자 ‘문화계 황태자’로 알려진 차은택씨가 실소유주인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를 수차례 발주한 경위에 대해서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해 10월 세워진 신생 광고업체로 설립 이후 신문·TV를 합해 총 6건의 현대자동차 광고를 제작했다.
검찰의 수사 칼날이 재계를 향하면서 각 그룹사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검찰이 최씨가 설립·운영을 주도하며 사유화했다는 의혹을 받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에 대한 예외없는 수사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특히 검찰이 필요하다면 기업 총수까지 예외 없이 부른다는 방침이어서 롯데·한화그룹을 비롯한 부영 등 다음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곳들은 불안한 기류가 역력하다. 롯데그룹의 경우 박 대통령, 신동빈 회장의 독대 논란이 있는 곳이다. 또 최씨 측이 70억원을 받았다가 롯데그룹 수사가 시작하자 돌려주는 등 의혹에 휩싸여 있다. 한화그룹은 삼성 전에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맡았다. 부영도 이중근 회장이 직접 K스포츠재단 측과 추가 기금 출연을 논의하면서 세무조사 무마를 시도한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그룹 총수까지도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며 “다만 가장 효율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외신들이 국내 사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경제적 영향도 고려해 수사를 진행한다는 뜻이다. 검찰에 따르면 최순실 게이트에 여러 국내 기업들이 연루됐다고 알려지면서 후지TV·블룸버그 등까지 국외 언론사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사태의 여파가 국내 대기업으로 나아가 해외 투자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외신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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