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미국 대통령의 출현으로 글로벌 정치 무대에서 ‘트럼피즘(Trumpism)’이 번져나갈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피즘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극적인 언행을 통해 유권자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조장,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기성 정치인과 다른 방식으로 기존의 정치 문법을 깨뜨리며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무려 15명의 후보가 출마한 공화당 경선에서는 당초 유력 후보로 꼽혔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등을 잇따라 쓰러뜨렸다. 보수적인 공약을 내걸고 거대 자본의 지원 아래 막대한 선거자금을 모아 TV 광고를 쏟아붓는 식의 선거운동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 오히려 승리 요인이었다. 주류 미디어의 비판은 무시한 채 소셜미디어를 소통 수단으로 삼아 막말을 불사하며 자기 생각을 쏟아냈다.
트럼프의 막말에 미국 유권자들은 열광했다. 트럼프는 먼저 “멕시코 불법 이민자는 범죄자”라는 말로 백인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시켰고 “나약한 오바마의 대외정책이 나라를 망쳤다”는 언급으로 노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이민자와 쓸데없는 무역협정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으로 블루칼라의 높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의 돌출 언행은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광고에 따로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특히 기득권 정치에 실망한 시민들이 ‘아웃사이더’ 트럼프에 열광했다. 주류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트럼프를 평가절하했으나 선거 결과는 트럼프식 선거법이 유효했음을 보여줬다. 세계화 속에서 일자리가 줄고 미국 내 계층구조에서도 아래로 밀려날 처지가 된 백인 중산층과 노동자들은 트럼프의 달콤한 선동적 포퓰리즘에 호응했다.
미국인의 불안감이 트럼피즘의 시작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최근 미 탐사보도 전문지 마더존스는 “트럼피즘은 불법이민자의 지속적 유입으로 미국인이 느끼는 분노와 불안한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인종차별주의와 애국주의가 트럼프와 만나 트럼피즘을 빚어냈고 앞으로 이는 지속될 것으로 우려했다.
문제는 이와 같이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트럼피즘이 글로벌 정치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인물이 아시아의 트럼프로 주목받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욕설을 하는 등 막말을 거듭하고 있지만 필리핀 국내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유럽에서도 트럼피즘과 유사한 공격적 포퓰리즘은 정치 지형을 급변시키고 있다. 올해 초 오스트리아 1차 대선에서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한 극우 정당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는 “오스트리아에서 무슬림을 쫓아내야 한다”고 밝히는 등 트럼프와 같이 특정 인종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유권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세계 정치로 번져나가는 트럼피즘에 미국 정치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디온 주니어 조지타운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트럼프뿐 아니라 트럼피즘도 물리쳐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트럼프가 사용하는 공격적인 정치가 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며 “트럼피즘이 백인 우월주의와 극우주의가 활개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고 우려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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