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당정이 합의한 내용은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야당 안과도 큰 차이가 없다. 선진국 중 누진제를 도입한 곳도 누진율이 대부분 2~3배 수준이다. 일부에서 주장해온 누진제 폐지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상당히 진전된 내용이라 할 만하다. 더구나 전기료 개선안이 설득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전기료 원가를 공개하기로 한 것도 전향적이다.
본격적인 겨울철에 들어가기 전에 전기료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지만 만시지탄의 아쉬움이 남는다. 주택용 전기료누진제는 TV 한 대 있는 집도 찾기 힘들었던 1970년대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TV뿐 아니라 김치냉장고는 물론 에어컨 보급률도 80%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40년 넘게 누진제를 적용해 요금폭탄을 안겼으니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합의로 전기료를 둘러싼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누진제 해결에 중점을 두다 보니 소비자선택용요금제 등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주택용·산업용·일반용 등으로 나뉜 용도별 요금체계의 합리적 개선과 계절·시간별 차별요금제의 확대적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도 미리미리 개선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뭉그적거리면 또 국민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