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4일 일본 정부와 협정에 가서명한 데 이어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 재가 후 연내 최종 서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의 강행을 밀실·졸속협상이라며 반발하는 야 3당은 한민구 국방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이달 말까지 제출하기로 했다. 협정 체결 찬성 측은 대북 감시를 위해 일본과의 정보채널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며 북핵 위협 앞에서 안보와 역사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대 측은 협정 체결이 일본의 재무장과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꼴이며 군사적 실효도 거두지 못한 채 동북아시아 군비 경쟁만 촉발시킬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최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뜨거운 이슈다. 정부는 이미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서명을 추진했다. 특히 광복 후에 한일 양국이 처음으로 맺게 될 군사협정이 바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기에 더욱 큰 관심이 모였다. 하지만 당시 한일 간 국민감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야가 모두 반대하고 나서자 결국 협정은 잠정 연기됐다.
지난달 말 국방부는 돌연 중지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일본 측과 협의하기 시작하겠다고 발표하고 모두 3차례의 협의 끝에 이달 14일 양국 간에 합의된 내용으로 가서명을 완료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조약이 아니어서 국회비준이 필요 없다. 가서명된 내용을 법제처 심사를 거쳐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친 후에 대통령이 재가하기만 하면 정보보호협정은 발효된다. 상당히 간결하면서도 행정적인 절차다.
그러나 야 3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체결을 두고 국민의 민심을 어기는 결정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야권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는 일본과의 협정 체결이 타국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규정하며 오는 12월1일 전까지 한민구 국방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제출해 2일 본회의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는 최순실 게이트 속에서 정부가 졸속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군사대국화를 노리는 아베 신조 정권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에 필요한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 덧씌우기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첫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단순히 도구일 뿐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국가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 전 반드시 갖춰야만 하는 법적 절차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모두 32개국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다. 대상국은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 등 우방국뿐만 아니라 6·25전쟁 당시 반대편에 있던 러시아 같은 나라도 있다. 게다가 우리 국방부는 북한과 군사동맹인 중국과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해왔다. 한마디로 정보를 거래하기 위한 ‘문(門)’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사안별로 판단해 필요한 정보만 거래하는 것이지 자동적으로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 아니다.
둘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자위대의 군대 인정과는 하등 관계가 없으며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 기존 일본과의 정보 공유는 2014년 12월 체결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에 따라 미국을 경유해 이뤄져왔다. 그러나 정보 유통경로 상에 중간자가 있다 보니 곤란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보란 중계자 없이 서로 직접 거래해야만 진짜 필요한 깊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 그 틀을 만드는 것뿐이다. 게다가 일본은 1998년 북한 미사일 대포동 쇼크 이후 2003년부터 첩보위성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12기를 쏘아올렸고 그중 현재 5기가 가동 중이다. 또한 통신감청에서도 서쪽으로 감시하는 일본은 우리 측이 감청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담당해 상호보완적으로 정보를 취합할 수 있다. 또한 미국 다음으로 세계 최대의 대잠초계기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과 협력을 통해 북한의 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 관련 정보를 취득할 수도 있다.
셋째로 우리의 급박한 사정도 협정 체결의 중요한 이유다. 북한이 5차 핵실험까지 실시했지만 우리의 정보·감시·정찰자산은 여전히 부족하다. 국방부는 정찰위성을 도입하는 ‘425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643억원을 요청했지만 국회에서 나온 예산은 20억원에 불과했다. 사실상 예산이 없다 보니 올해 예정됐던 도입 계약을 추진하기도 어렵게 됐으며 외국의 정찰위성을 빌려 운용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의 정보채널을 구축하는 것은 안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물론 일본 첩보위성들이 완벽하지는 않아 북한의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미사일 발사를 사전 탐지하지 못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자산들을 활용해 서로 보완한다면 북한을 들여다보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우리는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앞에서 우리 정부의 어떤 노력도 의심을 받는 지경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치권이 혼탁하면 할수록 국가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북핵 위협이 현실화를 넘어 이제 급박한 위기로 다가오는 시점에서 아무리 미운 과거의 적이라도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국의 리더라면 민심을 핑계로 표를 잃을 결정을 피해가기보다는 오히려 민심을 이끌면서 국가 이익과 안보 이익을 최대한 지켜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국면에서 장관 해임 건의안은 어불성설이며 오히려 책임 있는 정치권이라면 국론을 주도하면서 국방을 위해 필요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진영만이 차기 대권의 자격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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