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한 언론사는 대문짝만 한 크기로 “미국은 2007년 7월20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국에 보낸 외교 전문에서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 목사를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다른 언론사들도 일제히 이 기사를 그대로 받아 실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전형적인 오보였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과 관련한 ‘동향 보고’를 통해 이명박 후보 측의 주장이나 사회에 떠돌고 있는 소문을 인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카리스마 있는 최태민 목사는 인격 형성기에 박근혜의 심신을 완전히 지배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그런) 소문이 파다하다(rumors are rife)”는 구절을 싹 뺀 채 고의로 왜곡한 것이었다.
설령 경쟁 언론사가 이 같은 보도를 했다 해도 구글을 뒤져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원문들을 조사해보기만 해도 그 기사가 얼마나 사실관계를 왜곡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주류 언론사도 팩트(facts) 여부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혹시 멋없는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을 더 원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는 언론의 왜곡 및 선동적 보도는 이뿐이 아니다.
최순실의 아들이 청와대에서 근무했다거나 무기 로비스트인 린다 김과도 친분이 있어 무기 거래에 관여한 의혹이 있다는 정도는 차라리 애교에 불과하다. 얼마 전에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한 유세 현장에서 “여성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라”는 발언을 했다는 언론 보도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국내 네티즌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그냥 별생각 없이 웃자고 만든 짤’이었다. 이런 해프닝은 역설적으로 우리 언론의 팩트 확인 능력이 어느 수준으로까지 추락했는가를 입증해주고 있을 뿐이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사태가 전국을 휩쓸던 지난 2008년에도 우리는 언론의 무책임한 오보와 왜곡·선동 등으로 인한 폐해를 톡톡히 경험한 바 있다. 당시에도 ‘뇌송송 구멍탁’이라는 악의적 선전 구호에 휘몰리면서 엄청난 사회 비용을 치러야 했다.
MBC의 PD수첩은 2008년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등심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어도 안전하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심 의원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PD수첩은 2주일 후 갑자기 정정보도문을 내보냈다. “심 의원은 ‘광우병에 걸린 소일지라도 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한 나머지 부분은 안전하다’고 발언한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라는 요지였다.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기 위해 안전성을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악의적으로 변조한 전형적인 케이스였으나 최소한 그때만 해도 ‘고침’이라든지 ‘정정보도’ 같은 최후의 양심이 살아 있었다. 이제 광우병 사태 때와 작금의 최순실 게이트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되겠는가. 최순실 게이트에서는 아예 정정보도조차 사라져버린 것이다. 설령 며칠 후 오보로 판명되더라도 누구 하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아니면 말고 식이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를 주제로 출판된 여러 권의 책 가운데 필자가 최고의 비판서로 꼽는 것이 정지민씨의 ‘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주’라는 책이다. 저자 정지민은 PD수첩의 ‘긴급 취재-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제작 과정에 주요 번역자로 참가한 사람으로 집필 당시 고작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는 머리말에서 자신을 “앞으로 학계에 종사할 역사학도로서, 사실관계의 파악과 재현, 그리고 허용 가능한 오차 범위 내에 대해 항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이나 대학교수들이 광우병 마녀사냥 과정에 어줍지 않은 감성과 우스꽝스러운 비논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여지없이 폭로했다.
“무엇보다 사실관계만 제대로 존중됐다면 애당초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는 합리적 사회에서 거론할 만한 주제가 아니었다”고 그는 꼬집었다. “설마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일이 공중파(TV)에서 있겠는가 하는 신뢰가 반이었다…한국 사회가 적어도 그 정도도 되지 않는 사회라고는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중우(衆愚)정치보다 더 위험한 것은 중우언론이다. 100만명이 모였으면 하는 집단적 욕망이 어느덧 100만의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는 현실을 보라. 대한민국은 나라를 세운 지 올해로 68년째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은 스물여섯 살 저자의 뼈아픈 지적에서 한 치도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 shinwo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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