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기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최치원(857~?)은 12세에 중국으로 유학해서 과거 급제하고 관리까지 지냈다. 귀국한 것은 29세인 885년. 신라는 이미 기울어져 회복불능 상태였다(935년 신라멸망). 최치원은 수많은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골품 귀족체제는 이를 무시했다. 체제에 저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하지만 그는 41세에 관직을 버리고 은거한다. 유교와 불교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저작을 남겼다. 최치원은 신라시대에만 살았지만 그의 제자들은 고려시대의 발전을 이끈다. 자는 해운(海雲)으로 부산의 해운대라는 이름은 이에서 나왔다. 사진은 부산 해운대 동백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이다. /글·사진(부산)=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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