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20세기 초에 한국과 중국이 망한 것은 유학(유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아주 잘못된 오해이고 그릇된 인식이다. 서양은 19세기에 총·대포를 앞세워 동양을 침략했다. 하지만 그들이 침략에 사용한 총·대포는 중국에서 최초로 발명됐다. 총은 성리학이 발흥하던 시기에 나왔고 대포는 성리학이 관학으로 자리 잡은 때에 발명됐다. 이는 ‘대학’에서 말하는 격물치지와 거경궁리의 학문적 성과이다.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과학적 자세와 태도는 유학의 핵심사상이다. 송나라 주자의 ‘관념성리학’은 조선에서 ‘실천성리학’으로 다시 탄생한다. 세종·퇴계·율곡·이순신은 실천성리학을 몸으로 체현한 인물들이다.
유학은 로마 가톨릭 선교사 마테오리치에 의해 서양에 전파됐다. 그는 1582년에 마카오에 도착해 중국어를 익힌 후 광둥성에서 선교활동을 시작, 1599년 난징을 거쳐 1601년 베이징에 진출했다. 당시 명 황제 신종에게 자명종·대서양금(피아노 전신) 등을 선물해 환심을 사고 수도에 자리 잡아 선교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공자의 유학사상을 최초로 서양에 소개한 인물이다. 영국의 계몽주의 사상가와 중농주의 철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여 영국의 권리장전을, 그리고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후 공자의 경험론은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 정신) 발생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줬다.
동양은 확실히 서양보다 인문학교육에 앞서 있었고 과학 분야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인문학을 수학·과학·경제·기술 등에 결합하는 융합교육에서 서양에 뒤졌고, 결국 서양은 현대문명의 주역으로 떠올라 동양을 앞질렀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제국이 망한 것은 유학 때문이라고 알지만 사실은 정치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원인이다.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은 전국의 중추교육기관인 서원을 폐지해 680여개 중 47개만 남기고 모두 문을 닫게 해 인문학을 죽였고, 또 천주교를 박해해 9명의 프랑스 신부와 9,000여명의 신도를 참수했다. 당시의 천주교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창구였는데 대원군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쇄국정책을 고집했다.
고종도 황제로 취임했으나 대한제국의 정치체제로 ‘전제군주체제’만 고집했다. 당시의 국제정세는 절대왕권의 ‘전제군주체제’ 대신에 헌법을 제정해 왕권으로부터 백성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입헌군주체제’로 변환되는 시기였다. 고종은 군대를 동원해 ‘입헌군주체제’를 주장하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개혁지도자를 모두 잡아들였다. 이로 인해 민심은 고종으로부터 이반되고 얼마 못 가 대한제국은 일제의 야욕으로 망하고 만다.
19·20세기 우리는 유학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정치지도자와 지배계층이 오히려 유학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사리사욕에 발목 잡혀 빚어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진리다. 우리나라는 입법·행정·사법의 3권이 확실히 분리된 민주국가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국회에서 사회변화에 따라 새로운 입법을 제때 해주지 못하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구법을 답습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없다. 급변하는 산업사회와 국제정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 제정과 법의 개정이 신속하고 적절해야 한다. 사법부의 법 해석과 판단도 국민과 국익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화합과 소통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입법·행정·사법부 요원의 도덕성 회복이 절실하다. ‘도덕’이란 하늘의 뜻을 자신의 것으로 인격화해 땅 위에 쌓는 인간의 본분이다. 간단하고 쉽게 표현하면 ‘양심’을 지키고 ‘양심’을 세상에 펴는 일이다. 선비가 양심을 인간행동의 최후의 보루라고 얘기하는 이유다. 선비는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위대한 본성을 체현하고 실현하기 위해 허공에 사상누각을 짓지 않는다. 선비는 철저하게 일상의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며 관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을 존재의 본질로 생각한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입법·행정·사법부의 지도자는 이런 ‘선비정신’의 체현을 일상의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진수 선비리더십아카데미회장·전 현대차 일본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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