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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 '미씽' 처절해서 더 가슴시린 두 여자의 모성애

다섯 살 무렵 안양 지하상가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엄마 손을 놓친 뒤 아마도 장난감 가게 앞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손을 낚아채던 엄마의 손떨림과 붉어진 눈시울은 27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제작보고회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가 없는 감독과 두 배우가 만들어낼 모정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힘든 촬영과정과 우리말을 못하는 중국인 캐릭터 연기에 관심이 쏠린 탓도 있었다. ‘유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보통 당하는 입장만 주목해왔다는 점도 연말 들뜬 분위기를 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모든 것은 괜한 생각이었다. ‘미씽’은 뒤통수를 때릴만큼 독창적인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아니지만, 탁월한 편집과 배우들의 열연이 잘 녹아들어 대단한 성과를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다.

작품은 중국인 보모 한매(공효진)이 지선(엄지원)의 13개월 된 딸을 데리고 사라진 뒤, 이를 추적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지선은 한매와 딸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된 후 남편과 경찰에게 이를 알리지만, 오히려 이혼소송 중 딸을 뺏기지 않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심까지 사게 된다.

결국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지선은 홀로 한매의 과거를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더해지는 미스터리 속에서 한매의 이름, 나이, 출신 등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직면한다.



‘미씽’은 유괴사건을 중심에 두고 엄마와 또다른 엄마의 모성애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납치를 당한 지선도, 납치를 한 한매의 사정도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감정의 편차를 누구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다. 사회는 선과 악으로 둘을 가르지만, 결코 그렇게 바라볼 수 없는 흐름을 조율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사건의 단서들은 조각조각 흩어져있다. 경찰이 방심하는 사이 지선을 쏟아진 퍼즐을 하나하나 직접 찾아 나선다. 퍼즐 한 조각이 제자리를 찾으면 진실 한 조각이 공개된다. 단순히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 보모를 쫓는 추적극이 아니라는걸 눈치채고 나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사회적 고발과 마주한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미씽’은 모성애로 감춰져있는 여성, 외국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꺼낸다. 한매가 지선의 집에 보모로 오게 된 순간까지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처절해서 더 서글프다. 영화가 종반으로 흐르면 용서를 빌어야 하는건 한매인지, 아니면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인지 혼란스럽다.



딸을 잃어버린 엄마의 절절함도,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 한매의 절절함도 가슴을 울린다. 공효진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전혀 다른 배우로 돌변한다는 것을 다시 일깨웠다. 언제 내가 ‘공블리’였냐는 듯 웃음에서 고통 눈물로 이어지는 일련의 감정을 섬세하게 조율한다.

엄지원 역시 ‘소원’에서 한차례 보여준 적 있는 모성애를 극대화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짜증나게 바쁜 커리어우먼이 딸의 유괴로 인해 무너져내린 뒤 행사용 원피스를 입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 사건의 진실을 알게된 후 고통스러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부분에서 그녀의 연기가 정점에 다다랐음을 느끼게 된다.

모든 여성을 위한 영화라고 하면 알맞을까, 모든 엄마를 위한 영화라고 하면 알맞을까,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여성과 이주자들에 대한 편견을 지닌 사람들이 봐야 하는 영화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반이후 마무리까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섬뜩하고 가슴이 아리다 애잔해진다.



엄마는 27년 전 아들을 잃어버렸던 기억을 이따금 더올린다고 했다. 기껏해봐야 몇 분이나 됐을까. 그 공포에 질렸던 기억이 수십년 시간이 지나도록 생생하게 남아있는 이유를 ‘미씽’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성애 연기에 부담과 부족함을 느낀다’던 배우들과 연출이 큰일을 내도 정말 큰일을 냈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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