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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정치인의 말빚





세수 78세, 법랍 54세로 입적한 법정 스님은 2010년 2월 임종을 한 달가량 앞두고 유언장을 발표한다. “내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 이생에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절판 선언’이었다. 이후 그의 이름으로 쓰인 모든 책은 회수됐고 지금도 공식적으로 판매되는 서적은 없다.

강원도 산골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법정 스님은 법문을 하기 전에는 밤새 준비를 하고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고민해 내놓은 글과 말이었건만 마지막 순간 모두 없애주기를 원했다. 생전에는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돼 내 몸을 태우고 만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라며 말의 위력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최근 정치권에 도를 넘어선 독설이 난무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특히 두드러진다. 얼마 전 계엄령 발언으로 논란을 빚더니 박근혜 대통령이 미용을 위해 2,000억원을 썼다고 잘못 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에 대해서는 ‘부역자’라는 말까지 써가며 비판하다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똥 볼 많이 찰 줄 알았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독설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 잠룡들이 비대위 구성과 대표직 사퇴를 요구하자 “지지율 모두 합쳐도 10%도 안 되면서 자기들 일이나 똑바로 하라” “지지율 10%가 넘기 전에 어디 가서 대권주자라는 말 팔고 다니지 말라”며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렸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도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한 홍위병과 내시 역할을 한 사람들을 몰아내야 한다”면서 ‘내시’라는 말까지 동원해 자극했다. 아무리 여론을 등에 업어야 하는 것이 정치권의 생리라지만 논리적 설득보다 이렇게 독설을 퍼부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말빚조차 저승으로 가져간 법정 스님이 들었으면 뭐라 할지 궁금해진다. /이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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