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때문에 서로 싸우던 태국 국민들이 국왕 장례식을 계기로 하나로 모이게 됐습니다.” (아누판 마크·26)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서거(지난 10월 13일)한 지 한 달이 지난 태국 방콕은 검은 리본으로 물들며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4일 외교부 공동취재단이 찾은 방콕 사남루앙 광장 주변은 추모 문구와 푸미폰 왕의 젊은 시절 사진, 흰색과 검은색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곳은 왕실이 위치한 곳이자 푸미폰 국왕의 분향소가 마련된 곳이다.
분향소에는 아직도 하루 2만5,000~3만명의 추모객이 찾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다 보니 이틀 이상 기다리기도 한다. 일부 시민들은 텐트를 치고 쉬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국 정부나 자원봉사자들은 간식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입구 앞에서 무료로 식사를 나눠주고 있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탓에 열사병이나 식중독에 걸리는 사람들도 많다. 군 당국은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분향소 내 진료소를 설치해 상시 대기하고 있다. 군부대뿐 아니라 간호학교 학생들도 한쪽에 천막을 설치하며 의료지원에 나섰다.
태국은 지난 2014년 군부 쿠데타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혼돈의 시기를 겪었지만, 푸미폰 국왕 서거 이후 슬픔을 함께 나누며 단합하고 있다는 게 태국 국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푸미폰 왕은 ‘태국의 아버지’ ,‘살아있는 신’으로 불리며 태국 국민들의 신망을 받았다. 70년간 재위하며 세계 최장수 재위 군주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재위 기간 19차례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혼란스러운 정세에도 중심을 잡으며 태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태국 정부 관계자는 “단순히 왕이 아니라 국민에게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태국 국민들이 가슴으로 슬퍼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에서는 현재 ‘검은 옷’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방콕 시내 옷 가게에는 검은 옷이 들어오면 동나기 일쑤다. 사회 분위기상 남녀노소 모두 검은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태국 정부는 공무원들에게 애도 기간(서거 이후 1년) 검은 옷을 입도록 규제하고 있다.
검은 옷을 새로 살 여유가 없는 서민들은 흰색 옷에 검은 물을 들여 입기도 한다. 이마저도 여력이 안 되면 검은 리본을 한쪽 가슴에 달아 추모의 뜻을 기린다.
직장인 포티(여·26)씨는 “대형 매장에서 검은 옷을 한꺼번에 내놓고 팔아도 순식간에 동날 정도”라며 “가끔 검은색 옷을 입지 않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은 검은 리본을 달아 추모하고 있고 이제는 서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콕=외교부 공동취재단·류호기자 rh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