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위임한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자진 하야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진 하야가 아닐 경우 대통령이 물러날 수 있는 방법은 탄핵과 헌법이 보장하는 자신의 임기를 개헌을 통해 단축시키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헌 정국으로 자신의 임기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 사실상 탄핵 동참 의지를 밝히면서도 개헌을 노리던 비박계에 탄핵보다는 개헌이 낫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선택’을 강요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개헌이 이뤄지면 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이 이뤄질 수 있다”며 “지지부진한 개헌 논의를 어떤 형태로든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탄핵 가결 이후 개헌 정국으로 이끌고 가려던 더불어민주당 반문재인계(反文)와 국민의당은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은 이날 박 대통령의 담화문을 ‘함정’ ‘꼼수’로 표현하며 계획대로 탄핵 일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탄핵 가결이나 부결 여부에 상관없이 친박을 포함한 새누리당 주도의 개헌 논의는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될 경우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민주당도 우선 개헌 논의에는 참여할 수밖에 없다. 우상호 원내대표가 1월 초 여야 합의대로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데다 결과가 불명확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심판을 기다리기보다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퇴진 시점을 앞당기려는 시도가 요구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개헌파인 반문(反文)계와 국민의당 역시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명분으로 개헌 논의에 심사하면서도 대통령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등 다른 개헌 이슈 논의로 확장을 시도하겠지만 개헌 논의로 상당한 시간이 소비되고 대통령이 본연의 임기대로 마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또 여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 헌법재판소 역시 개헌 이슈가 정국을 장악하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갈 경우 탄핵 불가 입장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SNS)에서 “대통령의 이날 담화문은 개헌으로 야권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탄핵이 부결되면 야권은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에라도 나서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탄핵이 부결된 만큼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만으로 개헌 정국을 이끌고 나갈 가능성은 적다. 개헌파인 정진석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퇴진이라는 국민적 함성에 부응하는 답변을 내놨다”며 “야권에 탄핵 일정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사실상 개헌 논의에 돌입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민주당 관계자는 “결국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 시점에 맞춰 새누리당, 제3 지대에 머물고 있는 범여권 인사 등과의 연정을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며 “탄핵이 부결되고 개헌 논의가 진행된다면 대통령의 퇴진 시점은 점차 늦춰질 것이고 개헌 논의만 무성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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