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
뮤지컬 배우에게 숙명 같은 이 말은 혼란 가득한 지금 시국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촛불 정국 시기 개막·공연 중인 일부 뮤지컬 공연의 배우들은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 오르면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현장의 에너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우리 집 개가 말을 안 들어요. 이름이 순실이라고. 여기저기 똥을 싸고 다녀서…” “버릇을 고쳐주러 달로 보내야겠군요. 심심하지 않게 ‘그네’도 달아주고 말이죠.” 지난 26일 서울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뮤지컬 ‘오!캐롤’ 공연 무대에 익숙한 이름이 울려 퍼졌다. 팝 거장 닐 세다카의 음악으로 만든 오캐롤은 1960년대 미국의 파라다이스 리조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러브스토리로 2016년 한국의 정치 이야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1막 초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원래대로라면 리조트 쇼 진행자인 허비와 에스더가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 달에 보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과 ‘꿈 같은 이야기’라는 답변을 주고받은 뒤 끝나야 했다. 제작사 측은 “오캐롤이 쇼 뮤지컬이기는 하지만, 관객이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 프로듀서·연출·배우들이 의견을 모아 오프닝 부분에 풍자성 대사를 넣기로 했다”며 “허비 역을 맡은 세 명의 배우가 매 공연 저마다의 방식으로 멘트를 처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한 뮤지컬 ‘인터뷰’도 특별한 방식으로 촛불 행렬에 동참했다. 이날 출연 배우를 알리는 캐스팅보드 옆에는 촛불 모양의 등이 나란히 붙었다. 제작사 관계자는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회 현장에 나가지 못한 배우들이 많다”며 “이건명 배우의 제안에 다른 출연진도 뜻을 함께해 26일 5차 촛불집회 당일 색다른 방식으로 촛불을 들었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성향이 짙은 뮤지컬은 최근 사태에서 사실상 한 발 비켜나 있었다. 예술인 블랙리스트의 핵심 당사자인 연극계가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토론회, 항의 퍼포먼스를 개최한 것과 달리 이렇다 할 움직임 없이 배우의 개별적인 집회 참여나 의견 표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정부 규탄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작품을 중심으로 한 공개적인 풍자 및 촛불 동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집회 현장 한가운데로 나와 직접 공연을 펼친 배우들도 있다. 연출가 변정주를 중심으로 오소연·정영주 등 뮤지컬 배우 32명은 지난 26일 제5차 촛불집회에 참여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곡 ‘나 여기 있어요’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민중 봉기의 상징인 넘버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