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상업영화의 흥행 공식의 잣대로 봤을 땐 마냥 성공 가능성을 점치긴 어려워 보였다. 특히 남자 투톱이 아닌 여자 투톱의 영화라는 점이 배급사 및 투자사의 과감한 선택을 주저하게 했다.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엄지원은 “증명해봐. 이 영화가 분명 된다는 걸”이라는 시험대에 놓인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내부적으로 이 이야기의 방향성에 있어서 엄마 이야기가 아닌 결국 ‘여자 이야기’ 라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어요. 소소한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이 고민들은 모두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 했던 치열한 고민이자 고투였어요.”
이언희 감독의 ‘미씽’에서 엄지원은 아이를 잃어버렸지만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홀로 보모 한매의 진실을 파헤치는 워킹맘 지선으로 분한다.
“뭐랄까? 주어진 예산 안에서 했던 싸움들, 그 안에서 했던 하나 하나의 과정들이 저에겐 내 외 적으로 지선이와 같은 마음으로 다가왔어요. 외롭고 또 외로운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렇기에 이번 작품은 엄지원의 필모그래피 중 더욱 특별한 영화이다. 배우로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제대로 담겨 있기 때문에.
Q. 이준익 감독의 ‘소원’에 이어 다시 한번 엄마 역을 맡았다. 작품 선택 배경은
▲ ‘미씽’ 같은 경우에는 시나리오를 덮으면서 ‘무조건 하고 싶다’ 고 말할 정도로 끌렸던 작품이에요. ‘소원’과 같은 선상에서 모성애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제게 좀 다르게 다가왔어요. 단순히 엄마의 이야기만이 아닌, 싱글맘이자 워킹맘, 그리고 계약직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Q. 그래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충무로 흥행 공식과는 좀 다른 영화라는 시선도 팽배했을 것 같고.
▲ 초반에 시나리오를 가지고 브레인스토밍 수준으로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제가 맡은 지선이란 인물이 ‘비호감 이다’는 거였어요.
워킹 맘으로서 자신이 맡은 일도 잘 못한 것 같고, 아이도 내팽겨치고 온 것 같은 인상이 있었나 봐요. 이런 비호감적인 인상을 어떻게 해소 할 건가? 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물론 왜? 나는 지금도 너무 괜찮은데, 왜 그렇게 바라볼까? 란 의문은 있었어요.
Q. ‘지선’ 이란 인물을 너무 남자의 시각으로만 바라 본 것 아닌가?
▲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게 다듬는 과정이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해요. 다만, 제가 보기엔 지선이란 인물은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잖아요. 내 옆에 있는 사람 같고, 또 내 친구 같은걸요. 그럼에도 일하는 여자가 아이를 잘 보는 것 또한 여자의 몫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에 부딪쳤던 부분도 있어요.
또 지선인 아이가 사라져 경황이 없는 과정 속에서, 사라진 보모를 찾는 당사자이자, 사건을 바라보는 관찰자, 즉 이 작품의 화자이기도 해요. 뭔가 더 드라마틱한 걸 넣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 충분히 이 인물이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다고 봤어요.
Q. 그런 상황 속에서 캐릭터 설정 및 감정 컨트롤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게다가 지선이의 감정선을 하나로 쭉 끌고 가는 작품이 아니다.
▲ 순서대로 촬영을 한 게 한 게 아니라 뒤죽박죽 찍었어요. 예산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었구요. 대본을 많이 보면서 저만의 맵을 그려요. 아이를 잃고, 또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그동안 숨겨진 것들이 하나 둘 밝혀지는 영화 잖아요. 그 중심을 잡고 감정의 레벨을 조율하면서 찍었어요. 연기할 때 항상 그런 것들을 신경 쓰면서 밸런스를 맞추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Q. 치밀하게 분석하고 준비해가는 스타일인가 보다.
▲ 촬영장에 가기 전엔 아주 철저하게 계산하는 편이죠. 그걸 놓치면 연기 하기가 힘들어져요. 무엇보다 전체 그림이 안 맞게 되거든요.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그 순간 나의 진심이다’는 것은 당연하지요.
Q. 한국 사회 속에 처한 여자들의 모습을 ‘스릴러’의 장르로 보여줘 더 매력적인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가 흐를수록 깊이 빠져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씽‘은 모성으로 시작해 ’여성‘으로 끝나는 작품입니다. 관객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어요. 언론시사회와 VIP시사회 때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리둥절했어요. 지인들한테 ‘진짜?’라고 되묻기도 하면서요.
저희 작품 속 지선과 한매의 드라마가 낙차가 커요. 같은 여자로 봐도 한매는 굉장히 불쌍하고, 너무 안쓰러우니...드라마틱한 부분을 한매가 가져가기 때문에, 전 영화의 톤 상으로도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 속에서 여자가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잘 담아낸 영화죠. 그 지점 역시 잘 통했다고 봐요.
Q. 이번에 상대 역을 맡은 공효진씨가 출연한 드라마 ‘질투의 화신’이 화제가 됐다. 그 후광을 입어 영화도 흥행 할 수 있을까?
▲ 영화와 드라마의 흥행이 별개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관객이 돈을 내고 선택해서 보는 장르잖아요. 영화 자체로 승부를 해야 하는거지, 인기와 스타성으로 승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우리 배우가 망하고 오는 것 보다는 기쁜 맘이 커요. 효진씨 드라마가 잘 돼서 좋죠.
Q. 거칠게 화면을 잡아내 여배우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던데, 완성된 화면을 보고 놀랐을 것 같다.
▲ 여배우들에게 DI(디지털 색보정)도 안 한 영화인데, 분명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동감을 했어요. 그럼에도 시사회 때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화장도 안 했는데, 스크린에서 어마무시하게 클로즈 업으로 찍히잖아요.
(영화 ‘소원’ 때도 민낯으로 촬영했지 않나?)‘소원’ 때도 정말 화장 안 하고 찍었는데, 그 땐 ‘DI’ 작업을 해서 그래도 이번보단 리얼하지 않았어요. 제 모습을 제가 보고 너무 놀라 체할 뻔 했어요. 하하.
인터뷰②에서 계속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