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의 새벽 물안개를 기대하고 갔건만 안개는커녕 수증기도 구경할 수 없었다. 대신 20~30명쯤 돼 보이는 사진작가들이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한강의 아침 풍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가격을 합치면 어림잡아 2억원은 넘을 것 같다’는 허튼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습기를 머금은 강가의 추위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셔터를 눌러대는 손가락이 시려 오더니 점차 감각이 없어져버렸다. 언 손을 주머니 넣었다 뺐다 하면서 한 시간쯤 사진을 찍고 난 다음 해장국으로 추위라도 쫓을 요량으로 발길을 돌려보니 햇살이 퍼져가는 공원은 휑하게 비어 있었다. 먼저 온 사진작가들은 언제 가버렸는지 모두 사라지고 아침 산책을 나온 이들이 두물머리공원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해 영월·충주·여주·이천을 지나서 이곳 경기도 양평까지 흘러온다. 한강을 이루는 또 다른 물줄기인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발원해 양구·춘천·가평을 거쳐 여기서 남한강을 만난다. 이곳이 두물머리라고 불리는 이유다.
뒤섞인 양수리의 물은 1주일 후면 서울시민이 사용하는 수도꼭지로 쏟아져나온다. 한강까지 흐르는 시간은 얼마 안 되지만 취수장에서 소독 등 정수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까닭이다. 양평 일대의 상수원보호구역은 77㎢로 여의도 면적의 10배쯤 되는데 유역이 이렇게 확대된 것은 지난 1973년에 팔당댐으로 강을 막은 후부터다.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은 양평군민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제초제 사용이 금지됐고 일체의 공장 건설도 불허됐기 때문이다. 개발 억제로 한때 양평군의 땅값은 인근 지역에 비해 오름폭이 적어 군민의 불만을 사기도 했지만 결국 이 같은 조치는 전화위복이 됐다.
전국 최초의 친환경 농업특구로 지정돼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게 됐고 청정지역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환경이 재산으로 둔갑했다. 양평 지역 면적의 70%가 산악지형임에도 ‘물 맑은 양평’을 슬로건으로 내건 것은 이 때문이다.
양평이 청정한 것은 환경이 입증하고 있다. 박광희 문화관광해설사는 “두물머리 앞 뱀섬에는 1973년 팔당댐을 막기 전 큰 홍수가 나서 뱀이 많이 떠내려와 서식 밀도가 높아졌다”며 “섬에는 포천 쪽에서 가마우지 두 쌍이 날아온 후 번식해 지금은 그 수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뱀섬에 살고 있는 뱀과 가마우지가 양평의 청정을 증거하는 지표인 셈이다.
두물머리 구경을 마친 후 지도를 펼쳐보니 동선을 단축하려면 서후리숲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2013년 6월에 개방해 양평 토박이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15년 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면적은 100만㎡지만 일반에 개방하는 곳의 면적은 전체의 3분의1 정도다.
오솔길 곳곳에 다양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자작나무와 잣나무는 40년 정도 됐으며 특히 자작나무숲이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진입로가 정비되지 않아 접근이 쉽지 않지만 고적한 분위기와 울창한 숲이 아름답다.
양평을 찾았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용문사다. 놀라운 사실은 이 절이 큰 규모에 걸맞지 않게 서울 봉은사의 말사라는 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용문사의 상징은 은행나무다. 수령 1,100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30가마니의 은행을 생산했지만 이제는 기력이 쇠했는지 5가마니의 은행을 산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옛 이름이 ‘미지산’인 용문산은 전략 요충이어서 한국전쟁 때는 용문산전투와 지평리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용문산전투는 장도영 장군이 이끄는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 2만명의 병력을 궤멸시킨 전투로 이승만은 이후 전투가 벌어졌던 화천호의 이름을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뜻의 파로호로 명명했다.
지평리전투는 미군 2사단 23연대와 몽클레어 중령이 이끄는 프랑스군 대대가 중공군 5개 사단에 포위돼 1주일 동안 버틴 끝에 격퇴해 세계 전사에 이름을 올린 전투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왔다는 김병국 해설사는 “웨스트포인트 전쟁기념관에는 미 23연대의 지평리전투 승리를 게티즈버그 전투보다 훨씬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의미를 강조했다. /글·사진(양평)=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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