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한국시간) 마드리드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에서 열린 3부리그 팀과의 스페인축구 국왕컵 32강전. 레알 마드리드의 네 번째 골이 터질 때 벤치의 지네딘 지단 감독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는 듯해 보였다. 득점한 선수는 엔조 지단(21). 지단의 장남이었다. 엔조는 1군 데뷔전에서 골까지 넣으며 레알 마드리드 대선배이기도 한 아버지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줬다. 지단은 “감독직을 떠나 얘기하자면 아들이 활약해서 매우 기쁘다”고 했고 엔조는 “꿈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둘째 아들도 유스팀 골키퍼로 뛰는 등 지단의 네 아들 모두가 레알 유니폼을 입고 있다.
스포츠 스타 2세들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의 아들 지오반니 시메오네(21)도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탈리아 세리에A 제노아의 주전 공격수로 최근 강호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2골을 폭발해 주가가 폭등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는 명장인 아버지 시메오네 역시 선수로서 전성기는 세리에A에서 보냈다.
축구뿐 아니라 자동차경주 포뮬러원(F1)에서도 부전자전(父傳子傳)이 대세다. 독일의 니코 로스베르크(31)는 아버지 케케 로스베르크가 1982년에 그랬던 것처럼 올해 F1 시즌 챔피언에 올랐다. ‘F1 황제’ 미하엘 슈마허의 아들 믹 슈마허도 17세에 하부리그 격인 F3 진출을 앞둬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스타 출신의 특급 유전자를 물려받은 2세들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뽐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르기로 결정했다면 엄청난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아들로 불리며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업적과 비교당한다. 차두리는 지난해 은퇴하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버지(차범근) 근처에 가지 못하니 속상함도 있었고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스포츠 스타 2세라면 누구나 ‘과연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하는 주변의 기대와 의구심을 짊어진다. 새 시즌 준비가 한창인 프로야구에서는 넥센 히어로즈 신인 이정후(18)가 단연 화제다. 아버지 이종범의 별명이 ‘바람의 아들’이었으니 아들은 ‘바람의 손자’인 셈이다. 이정후는 야구천재로 불렸던 아버지를 닮은 덕인지 고교 시절 빠른 발과 주루 센스, 유격수로서 넓은 수비 범위를 뽐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으며 “아버지를 뛰어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이정후는 당장은 주전 경쟁을 뚫는 게 첫 번째 목표일 것이다. ‘농구천재’ 허재의 아들 허웅은 프로 3년차인 올 시즌 기량이 만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아버지가 쌓은 아성을 향해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잘 알려졌듯 스테픈 커리가 정상급 슈터였던 아버지 델 커리를 뛰어넘고 농구판을 접수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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