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혼밥’과 ‘혼술’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이른바 ‘혼불(혼자 촛불집회 참석)’의 형태로 새로운 집회문화를 만들고 있다. 나 홀로 생활에 익숙하지만 의사표현에서는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20·30대가 광장에서 곧바로 하나의 집단을 이뤄 ‘혼불족’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2일 경기도 평택에서 만난 직장인 이예슬(27)씨는 “촛불집회에는 가고 싶은데 나가도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멍하니 있게 될까 고민됐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이들을 모아보려고 ‘혼자 온 사람들’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지난달 4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개설한 ‘혼자 온 사람들’ 페이지는 순식간에 큰 화제가 됐다. 이씨와 같은 고민을 하던 많은 젊은이가 “나도 갈 것이니 현장에서 만나자”고 호응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퇴진 5차 촛불집회에는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혼자 온 사람들’이라는 글귀가 적힌 깃발 아래에 600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전문가들은 혼불족 등장이 타인과 약속은 부담스럽지만 현장에서는 또래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젊은층의 욕구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 광장에서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고 일정이 마무리되면 자기만의 생활로 돌아가는 방식이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광장 문화가 익숙한 50·60대와 달리 젊은층이 광장에 혼자 나서기는 두렵고 낯설 것”이라며 “이 같은 두려움 해소와 소통 방식의 변화가 혼불족 등장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5차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는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각자 가져온 간식을 나눠 먹고 집회 일정을 함께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서울 지리에 밝다는 이유로 행진의 ‘길잡이’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씨는 “모임을 그냥 해산하기는 아쉽다는 의견이 많아 참석자들이 모여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할 것”이라며 “3일 집회에 앞서 현장에서 첫 오프라인 모임도 가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최대 300만명까지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3일 6차 촛불집회는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로 진행된다. 집회에서는 여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내년 4월 퇴진 6월 대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비판 집회가 국회와 새누리당 당사에서도 열릴 예정이어서 성난 민심이 광화문을 넘어 여의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평택=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