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정국이 조기 대선 체제로 전환되면서 대권 주자들의 이슈 선점 경쟁에도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특히 탄핵 가결 이후 국정 주도권을 움켜쥐었다고 판단한 야권 잠룡(潛龍)들은 너도나도 ‘개혁’을 키워드로 한 선명성 경쟁에 돌입한 모양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일 입장문을 내고 “이제 대통령·정부·국회가 도도한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들 차례다. 촛불혁명을 정치가 완성해야 한다”며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청산과 개혁을 위한 입법과제를 선정하고 추진할 ‘사회개혁기구’를 구성하자”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촛불혁명의 끝은 불평등·불공정·부정부패의 ‘3불(不)’이 청산된 대한민국”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구악을 청산하고 낡은 관행을 버리는 국가대청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대청소’를 위한 6대 과제로 △부정축재 재산 몰수 및 지위 박탈을 통한 비리·부패 공범자 청산 △사유화한 공권력을 국민에 환수 △정권유착 엄중 처벌을 통한 재벌개혁 △국정농단을 비호한 권력기관 문책을 통한 권력기관 개조 △언론 장악 책임자 처벌을 통한 언론 개혁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 등을 제시했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며 문 전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과 ‘3강 체제’를 구축한 이재명 성남시장도 자신의 장기인 선명성 투쟁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이 시장은 이날 한 강연에서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올 때 수갑을 채워 서울구치소로 가는 것을 온 국민이 봐야 한다. 황교안 총리는 양심이 있으면 사퇴해야 한다”며 강경 노선을 견지했다.
갈 길이 바쁜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역시 ‘부패 기득권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등 지지율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게이트는 정경유착을 비롯해 뿌리까지 썩은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며 “검찰·재벌·관료 등에서 국민의 재산과 희망을 짓밟아온 세력들을 모두 찾아내 응징하겠다”고 공언했다.
안 전 대표는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강화,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 등을 통한 불공정한 경제구조 개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통한 검찰 개혁 △관료사회의 전관예우 관행 척결 등을 제시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발간한 온라인 레터 ‘겸사겸사’에서 “1789년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인권선언을 통해 세계사에 기여했다. 우리에게도 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선언, 권리장전이 필요하다”며 “국민적 합의가 모인 ‘권리장전’으로 대한민국 대개조의 방향키를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돌아보면 ‘광장지기’로서 저도 시민들과 함께 절망했고, 분노했고, 환호했고, 행복했고, 힐링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라며 “낡은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은 아직 먼 길을 남기고 있다. 국민과 함께 긴장하고 열정과 지혜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친정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새누리당은 재산 모두를 국고에 헌납하고 법적으로도 해체하기를 요구한다”며 “구 체제 해체의 핵심은 권력과 부의 독점을 깨는 것이다. 권력과 부의 독점의 상징은 대통령·새누리당·재벌”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기반으로 한 대선 주자들의 개혁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표시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잠룡들이 ‘표 경쟁’에만 매몰될 경우 경제·안보 위기 극복을 위한 진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대권주자들 스스로 포퓰리즘을 경계하면서 국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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