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이 3일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예산(386조4,000억원)보다 3.6% 늘어난 400조5,000억원 규모로 사상 최대치다. 올해 예산심의에서 ‘최순실 예산’이 최소 1,748억원(예결특위 추산)에서 최대 4,000억원 가까이 삭감됐다. 정치권은 삭감 예산 대부분이 쪽지예산으로 실세 국회의원의 지역구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세 국회의원 지역구의 신공항·도로와 전철 신설 등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는데 수요가 없어 휑한 경우가 많았다. 쪽지예산 등 부실 예산심의가 초래한 대표적 예산 낭비 사례다.
국가기관 곳곳에 숨어 있는 예산 낭비는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다. 국정감사에서는 매년 예산 낭비 사례가 터져 나오고 복지예산 횡령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는 공사가 벌어지고 국책연구비는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고 한다. 지자체는 빚을 내 호화 청사를 짓고 선심성 축제로 세금을 낭비하며 지방 공기업을 이용한 과잉 투자 등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심각하다. 심지어 청와대에서도 예산 낭비의 냄새가 진동한다.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연 5억원 초과 소득에 대한 소득세율이 현행 38%에서 40%로 2%포인트 인상됐다. 한국의 소득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5.9%)보다 높다. 소득세율 2%포인트 인상으로 늘어나는 세수는 6,000억원, 야당 안대로 법인세율을 3%포인트 인상할 경우 더 들어오는 세수는 4조원 정도다. 인건비·국방비 등의 경직성 예산을 뺀 나머지 예산 160조원의 10%를 줄일 경우 절약되는 예산만 해도 16조원에 이른다. 국민만 생각한다는 정치권은 세출예산 구조조정으로 국민의 부담을 덜어줄 생각은 않고 세율을 올려 세금을 더 걷을 궁리만 하고 있다.
한편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성장률이 2% 초반으로의 추락이 예상되는 내년에 또 세수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경쟁력 없는 산업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정치적 리스크까지 겹쳐 한국 경제는 소비와 투자·수출의 빙하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고용절벽이 심화하고 민생은 더욱 어렵게 된다. 대선을 앞두고 민생을 챙겨야 할 정부와 집권당은 자연스럽게 추가경정예산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본예산과 추경으로 세출을 늘려봤자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에서 편법과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한 경기가 회복되고 민생이 나아지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정부 예산 편성 과정에서의 끼워 넣기와 부풀리기, 국회의 쪽지예산 등 부실 예산심의, 예산 집행 공무원의 횡령 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는 반감된다. 더구나 재정 정책에 소요되는 재원을 국채 발행으로 마련할 경우 미래 세대가 부담할 국가채무가 늘어난다.
정부와 국회는 세출예산을 늘리기 전에 법과 제도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나랏돈이 줄줄 새는 블랙홀부터 없애야 한다. 이래야 확장적 재정 정책이 성과를 내면서 경기가 회복되고 민생이 나아진다. 국정 혼란과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기업과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정부와 국회가 민간이 쓸 돈을 세금으로 거둬 권력층이 이를 남용하면 민생은 더욱 어려워진다.
박상근 세무회계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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