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스톰 세계 경제 덮친다’, 국내외적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 닥터둠(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경제위기설이 데자뷔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위기설은 경제적 요인보다 더욱 부정적 영향력을 가지고 경제의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내용도 대체로 자극적이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상당한 불안감에 휩싸여 합리적 판단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위기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잊히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불확실성 시대에 사는 일반 대중들은 미래를 이야기해주는 지식인의 입을 주목한다. 그런데 그 예측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잘 반영한다고 생각할 때 더 잘 믿는 경향을 보인다. 즉 현재 상황이 힘들수록 비관론자들의 위기론은 더욱 힘을 얻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대표적 비관론자로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해 명성을 얻은 후 약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비관적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가 불안할 때면 그는 여지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경제라고 하는 것은 사이클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경기 하락국면은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다. 하락국면이 시작되면 그것은 그전에 상승국면이 있었다는 뜻이다. 대개 하락국면은 상승국면에 비해 짧고 강렬하기 때문에 대중들이 느끼는 공포나 체감의 정도도 매우 크다.
학창시절 우수에 젖어 인생의 허망함과 절망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쾌활한 친구들보다 왠지 모르게 멋져 보였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이처럼 위기와 파국을 논하는 것이 낙관과 희망을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고민의 결과처럼 보이는 편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대중들은 위기와 같은 부정적인 상황에 쉽게 휩쓸리는 경향을 보인다. 1999년 밀레니엄 위기설, 21세기 페스트일지 모른다던 사스(SARS) 등 대중들의 이성을 넘어선 공포는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희화적이다.
과거 수많은 사례를 분석해보면 위기는 늘 우리 주변에 상존하는 상수의 개념이다. 결국 위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밝아오는 새벽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즉 위기의 본질은 극복의 대상이라는 것에 있고 그 과정에서 인류의 역사는 발전한다. 지금 대한민국도 비록 총체적 위기 국면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짧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길게는 IMF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온 국가이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우려하는 이가 많다면 현재 불확실의 정도가 높다는 뜻이다. 즉 현재가 매우 어렵다면 그 골이 깊었으니 이제는 좋아질 가능성도 매우 높을 수 있다.
미래는 예언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닥터둠은 필요 없다. 지금의 위기는 상시적으로 우리와 함께하는, 그리고 늘 성공적으로 극복해왔던 대상일 뿐이다.
서명석 유안타증권(003470)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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