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색채전문기업 팬톤은 2017년 색으로 ‘그리너리(Greenery, 나뭇잎 녹색)’를 선정했다. 팬톤은 매년 12월이 되면 이듬해 상징적인 색을 선정하는데 이 컬러는 세계 패션을 비롯한 산업 디자인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수 많은 컬러를 접한다. 평범한 사람도 한 번에 구분할 수 있는 컬러의 수가 약 100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인식하지는 못해도 색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컬러는 인간의 감정과 욕구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와 힘을 지닌다. 컬러에는 사람의 마음이 반영된다. 컬러는 감성이며 이미지다. 따라서 상품의 컬러를 보면 상품의 이미지나 그 사람의 기호를 알 수 있고, 이러한 현상을 집약하면 시대를 읽을 수도 있다. 특히 패션에서 컬러는 시작인 동시에 완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자연환경에서부터 컬러에 민감하게 반응, 발전시킬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색의 본질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이를 제품에 과학적으로 반영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사복을 예로 들자면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판매된 신사복의 컬러는 감색이다. 중후한 남성에게 가장 무난하게 어울릴만한 컬러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색에도 온도의 개념이 존재하는데, 따뜻한 계열에 속하는 황인종인 우리 피부에는 차가운 계열에 속하는 감색이 중요한 미의 기준인 밸런스를 맞춰주기 때문이다. 서양인에게 인기있는 브라운 계열이 국내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필자가 과거 프랑스 라이선스 브랜드를 국내에서 전개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국내 디자이너가 프랑스 본사 디렉터의 지침에 곤란해하던 일이 있었다. 본사 디렉터는 올리브 색을 해당 시즌 유행 컬러로 지정해 적용을 지시했지만, 국내 디자이너는 올리브 색은 국내 남성복에는 어울리지 않는 컬러라 난색을 표했다. 필자는 프랑스 본사 디렉터를 설득했다. 전쟁의 아픔과 군대 문화가 존재하는 우리의 역사문화적 특성상 국방색을 연상시키는 올리브 컬러는 국내 남성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컬러는 피부색이나 인종뿐 아니라 국가, 문화, 시대를 반영한다. 색이 지닌 특성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컬러 마케팅은 특히 최근 국내에서 ‘디자인 혁명’이 화두가 되면서 패션을 넘어 모든 산업군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컬러는 브랜드 로고를 나타내거나 개성 있는 포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컬러는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컬러를 통해 오랜시간 단일 컬러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해온 브랜드, 산업군에 맞는 컬러를 제품이나 매장에 활용해 욕구를 최대한 자극하는 브랜드, 파격적인 컬러로 타깃에게 변화를 상징적으로 어필하는 브랜드로 이해되고 있다. 색이 지닌 힘은 이렇듯 부분의 요소에서 시작해 전체를 웅변하는 핵심으로 중요시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우리 패션산업이 침체를 벗어나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 색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연구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울러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그리너리가 2017년의 색으로 지정된 취지처럼, 우리 사회의 각 산업군에서 이 싱그러운 그리너리 컬러가 새해에는 새로운 활력에 대한 모두의 바람을 이뤄주는 신비한 색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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