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의 행보가 거침없다. 이렇게 빨리 치고 나올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다. 반성하는 척 한 발 후퇴라도 할 줄 알았다. 자성하는 척 고개라도 떨굴 줄 알았다.
돌아보면 친박의 행태를 제대로 예측하고 족집게처럼 맞힐 기회가 없지 않았다.
4·13 총선을 앞두고 막장 공천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도 눈 하나 깜짝 않던 친박이었다. 총선 참패의 원흉이라는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때도 그들은 요리조리 피하며 지도부를 꿰찼다.
정치판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정글이다. 정치인이 정글에서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는 보다 아름다운 세상으로 이어주는 사다리이기도 하다. 정치인에게 생존 경쟁만큼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마음이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친박계를 향해 “국민에 대한 도리보다 권력을 나눠준 사람에 대한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조폭의 논리와 다름없다”고 일침을 날린 것도 단순한 정치공세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조직 두목인 최형배(하정우)는 적과의 싸움에 조직원을 동원해달라는 최익현(최민식)의 부탁에 망설이며 답한다.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건달 세계에도 룰이라는 게 있는데….”
최형배는 잠시 고민하지만 “니캉 내캉 가족이라는 것보다 더 큰 명분이 세상에 어디 있노”라는 최익현의 다그침을 이기지 못한다. 명분이 아닌 의리를 택한 최형배가 파국을 맞는 건 예정된 수순이다.
주군과의 의리를 위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나라의 안위를 하찮은 자리로 밀어낸 친박들은 역사의 단죄가 두렵지 않은 걸까. 명분과 이성은 진작에 내팽개친 행보의 끝에는 어떤 정치적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걸까.
문득 친박이 그토록 괘씸히 여기는 유승민 의원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을 때도, 공천을 못 받고 당을 뛰쳐나갈 때도 ‘헌법’을 꺼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 후 비로소 답을 찾았다고 고백했다. 말하자면 그는 실타래가 얽히고 꼬여 해법이 보이지 않을 때 가장 근본으로 돌아가는 부류의 사람이다.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친박,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입니까. 당신들이 꿈꾸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정치부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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