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권교체기와 미중 무역갈등을 틈타 일본과 러시아 정상이 손을 맞잡으며 외교영토를 넓히고 있다. 양국 간 협력 강화는 그동안 유지돼온 미일 대 중러 구도의 글로벌 경제·안보 지형도에도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국 정상은 영토 문제에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해 본격적인 밀월 관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6일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열어 3,000억엔대에 이르는 양국 경제협력 방안에 합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건강 분야, 도시 정비, 중소기업 교류, 에너지, 러시아 공장의 생산성 향상, 러시아 극동지역 투자·인프라 정비, 원자력·정보기술(IT) 협력, 인적교류 확대 등 60여건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양국 정상은 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에 관해 ‘특별한 제도에 근거해 양국의 주권을 해치지 않는 공동 경제활동에 나선다’는 데도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양국은 외무성 등 관계부처 간 실무협의를 통해 북방영토에서의 공동 경제활동에 따른 납세 문제, 일본인이 사건·사고에 휘말렸을 때의 처리 방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이들이 약속한 공동 경제활동은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입장표명문에 ‘영토 문제를 포함한 (러일 간) 평화조약 체결로 이어지는 중요한 한걸음’이라고 명시돼 주목됐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의 숙원사업인 쿠릴 4개 섬 반환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쿠릴 4개 섬의 일본 귀속을 논의하기 위한 후속 협상과 관련해 러시아 측의 약속도 받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대규모 경협으로 영토문제를 해결한다’고 다짐해온 아베 총리에게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일 간 평화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것은 과거의 부정적 유산”이라고 운을 뗀 푸틴 대통령은 “공동 경제활동 실현에 따라 평화조약 체결을 향한 신뢰 구축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쿠릴 4개 섬 문제를 곧바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푸틴 대통령을 위해 전날 고향까지 내려갔던 아베 총리는 “8개 항목의 경제협력 계획에서 대부분 양국이 합의했다”며 지난 5월 자신이 러시아 소치를 방문했을 때 제안한 경협이 실현됐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영토문제를 비롯한 평화조약 체결에 대해서 그는 “우리들 세대에서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며 “해결에는 아직 곤란한 상황이 이어지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제대로 된 큰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전날 자신의 고향으로 푸틴 대통령을 초청해 95분간의 단독회담을 포함해 3시간의 정상회담과 2시간 만찬까지 총 5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으며 이날도 확대정상회담 개최 등 영토문제 해결 등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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