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 32부 박형남 부장판사는 21일 A(62)씨가 “약속한 땅을 달라”면서 어머니 B(92)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에서 1심과 달리 A씨의 패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평소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않은 A씨가 동업 해지 계약서를 위조해 두 사람이 나눠 갖던 건물 임대수익을 혼자 챙기려 한 것은 “‘망은(忘恩·은혜를 모르거나 잊음)’의 행위로 보고 땅을 주기로 한 증여계약은 무효”라고 설명했다.
망은 행위란 민법상 증여계약 해지 조건이 되는 수증자(증여받은 자)의 은혜를 저버린 행위를 말한다. 현행 민법은 수증자가 증여자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증여자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때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씨는 미국 유명 대학교 의과대학을 다니며 미국에서 생활하는 성공한 의사다.
4명의 자녀를 둔 노모 B씨는 1992년 1월 B씨가 숨지기 전까지는 관리한다는 조건으로 자신이 소유한 서울 용산구의 298.9㎡(약 90평) 건물과 3층짜리 건물을 아들 A씨 가족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의 증여증서를 건넸다.
또한 노모 B씨는 같은 해 4월 땅을 제외하고 건물만 먼저 아들 가족에게 증여하면서 건물 임대수익은 땅을 소유한 B씨가 4분의 3을, 나머지는 건물을 소유한 아들 A씨가 가져간다는 공동사업 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다툼은 B씨가 2004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당초 작성한 증여증서와는 다른 내용의 유언장을 쓰면서 발생했다. B씨는 2008년 5월 자필 유언장에서 ‘용산구 땅을 5등분해 4명의 자녀와 사후 산소를 돌봐줄 사람에게 나눈다’고 적었다.
이에 A씨는 과거 B씨가 써준 증여증서를 근거로 약속한 땅을 달라며 2012년 11월 B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였다.
1심에서 재판부는 “B씨가 1992년 땅을 증여하는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유권을 넘겨야 한다”며 A씨 승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양측이 맺은 증여계약은 A씨의 망은 행위로 인해 적법하게 해제됐으므로 소유권을 넘겨달라는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존의 판결을 번복해 A씨 패소로 결정했다.
A씨가 B씨의 몫인 임대수익을 챙기기 위해 동업해지 계약서를 위조한 혐의(사문서위조)로 어머니로부터 고소당해 지난해 8월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점이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A씨는 성공한 의사이자 교수로 자리 잡은 뒤에도 가끔 입국해 방문하는 것 외에 B씨를 부양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동업해지 계약서를 위조한 것은 신뢰관계를 침해하는 범죄로서 망은 행위”라고 밝혔다. /이세영인턴기자 sylee23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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