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초에서의 겨울’은 올해 프랑스에서 출간돼 유럽에서 각종 문학상을 휩쓴 작품이다. 속초에 사는 한국-프랑스 혼혈인 여성이 프랑스 만화가와 만나 서로에게 다가가는 내용의 이 책은 24세의 프랑스인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사진)이 썼다. 첫 소설로 스위스 ‘로베르트 발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문필가협회 신인상’을 거머쥐며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는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현재 스위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계속 자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 책은 지난 11월 국내에서도 출간된 뒤 입소문을 타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뒤사팽은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남과 북의 경계선이 있는 속초에서 나의 정체성을 느꼈다”고 소설의 배경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프랑스 파리와 한국의 서울, 스위스 포렌트루이를 오가며 자란 뒤사팽은 2010년 속초를 여행하며 강렬한 인상에 사로잡혔다. 그는 “소설 속 주인공은 한국어로 말하지만,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남자 주인공과는 또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며 “경계와 단절, 거리감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속초가 지닌 지리적인 특성에 이런 것들이 반영됐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으로 겪어야 했던 작가의 아픔은 소설 전반에 묻어난다. “저는 서양에서는 아시아인으로, 한국에서는 외국인·서양인으로 살아왔어요. 혼혈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주인공을 통해 내가 하지 못했던 삶을 그려보고 싶었죠.”
두 남녀의 미묘한 심리 묘사와 간결한 문체는 유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받은 로베르트 발저상은 프랑스·독일어로 출간된 신인 작가의 첫 작품에 주는 ‘문학계의 신인상’이다. 2년에 한 번, 언어별로는 4년에 한 번 수여하는 상이기에 이제 24세인 뒤사팽의 수상은 의미가 남다르다.
화려한 첫발을 내디딘 뒤사팽의 차기작도 ‘재일한국인’이라는 경계에 선 사람들을 다룬다. 뒤사팽은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를 만나 그들도 정체성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살아온 한국인 이야기를 현대를 배경으로 펼쳐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1월 중 일본으로 건너가 취재를 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책을 집필할 예정이다.
뒤사팽은 27일 속초에서 지역문인·독자와 함께하는 북콘서트에 참여하고, 28일 60년 역사의 속초 대표 서점인 동아서점을 방문해 사인회를 연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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