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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스터’ 이병헌 “애드리브의 마스터? 사실 전 애드리브가 두려워요”

2015년 개봉한 ‘내부자들’ 이후 이병헌은 자타공인의 ‘애드리브 마스터’로 불리게 됐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선보인 애드리브(ad-lib)인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이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이병헌의 신작인 ‘마스터’에서도 그가 선보일 애드리브를 기대하는 관객이 많아진 탓이다.

그리고 이병헌은 12월 21일 개봉하는 영화 ‘마스터’에서 이런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충실하게 애드리브를 영화 가득 채워놓았다. 돈세탁 전문 브로커 ‘피터김’의 이름을 듣자 “패티김이냐?”라고 되묻는 것이나, 키가 큰 김우빈에게 “목아파, 앉아”라고 툭 던지는 말투 등 ‘마스터’에서 이병헌의 대사들은 대부분 애드리브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재기발랄한 면이 넘친다.

영화 ‘마스터’ 이병헌 / 사진제공 = 퍼스트룩




하지만 ‘마스터’ 개봉을 앞두고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의 이야기는 달랐다. ‘내부자들’에서 애드리브를 하게 됐고, ‘마스터’에서도 애드리브를 많이 쓴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이병헌 본인은 애드리브를 즐겨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 그렇다면 애드리브를 즐겨 하지 않는 이병헌이 갑자기 애드리브를 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애드리브의 마스터가 됐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전 사실 애드리브를 두려워 하는 사람이에요. 애드리브는 잘못 사용하는 순간 신(Scene)의 전체 분위기를 망치거나, 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 수도 있거든요. 애드리브로 즐겁게 하는 것에 치중하면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중요한 대사는 묻히고 정작 애드리브만 살아나는 경우도 있어서 각별히 조심하는 편이죠.”

“그런데 ‘마스터’는 ‘진현필 회장’이라는 인물을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애드리브는 허용이 되는 영화였어요. 저도 악역 비슷한 역할을 특히 할리우드가서 많이 해봤지만, 보통 악역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과거 환경이라던지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이 사람이 악인이 되는 명분이 주어져요. 그런데 ‘진현필’에게는 그런 명분이 전혀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절대 악(惡)인 캐릭터죠. 그래서 평면적인 캐릭터로 보여지고 싶지 않아, 애드리브를 통해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이병헌이 창조해낸 ‘마스터’의 ‘진현필’은 그래서 매우 독특한 캐릭터다. 조의석 감독이 ‘의료기 역렌탈 계약 사기’로 수 조원의 피해를 양산해낸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인 ‘진현필’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체육관을 가득 메운 다단계 참가자들 앞에서 눈물까지 흘려가며 진정성을 어필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차갑고 냉정한 사기꾼으로, 그리고 김엄마(진경 분)와 박장군(김우빈 분) 앞에서는 양아치스러운 본색을 드러내며 변신한다.

영화 ‘마스터’ 이병헌 / 사진제공 = 퍼스트룩


영화 ‘마스터’ 이병헌 / 사진제공 = 퍼스트룩


이병헌이 ‘진현필’이라는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조의석 감독이 수 조원의 금융사기를 계획하는 치밀한 사기꾼의 이미지를 만들었다면, 이병헌은 여기에 가볍고 건들거리는 양아치의 본성을 애드리브를 통해 부여한 것이다. 최근 영화에서 악당의 트렌드가 과거처럼 평면적인 인물이 아닌 입체적인 악당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병헌의 이런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저 악당이 정말 사람같지도 않다고 생각하면 별로 무섭지 않아요. 진짜 무서워지는 순간은 저 악당이 진짜 사람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현실감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이거든요. ‘진현필’은 그래서 처음엔 저도 받아들이기 힘든 캐릭터였어요. 밑도 끝도 없이 나쁜 놈이니까. 그래서 저는 여기에 어떤 악행에도 자기 합리화를 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덧붙이기 시작했어요.”



“진현필이 주스를 마시는 장면도 자신이 살인을 지시해서 그 시체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럼 어떡해 내가?’라고 말하며 주스를 마시잖아요. 그게 ‘진현필’의 인간적인 면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단숨에 자기합리화를 시키는 장면이기도 해요. 그래서 ‘진현필’이 서민들의 쌈짓돈까지 빨아먹는 흡혈귀라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진하게 주스를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주스가 마음에 드는 형태로 입가에 묻을 때까지 농도를 다르게 갈아가며 10여 잔을 마셨죠.”

보통 관객들이 애드리브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그리 호의적인 편은 아니다.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애드리브는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 정도로 인식이 굳어졌고, 심지어 애드리브라는 말에서 ‘0드립’이라는 신조어가 파생되면서 애드리브의 가치는 더욱 떨어졌다. 하지만 애드리브가 원래 그렇게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양들의 침묵’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렉터 한니발 박사’의 캐릭터나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의 캐릭터 역시 상당한 부분을 배우가 만들어낸 애드리브에 기대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마스터’ 이병헌 / 사진제공 = 퍼스트룩


영화 ‘마스터’ 이병헌 / 사진제공 = 퍼스트룩


‘내부자들’, 그리고 ‘마스터’에서 보여준 이병헌의 애드리브 역시 마찬가지다. “패티김”이나 “양면테이프”와 같은 가벼운 애드리브조차도 아무 의미없이 그저 웃겨보고자 즉흥적으로 던진 개그가 아니라,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그가 생각한 ‘진현필’이라는 인물을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배우 이병헌’이 내뱉은 애드리브가 아니라 ‘진현필’이라면 분명히 저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촬영 시작 전 대본을 읽으면서 애드리브를 떠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연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감독이 쓴 것은 이렇지만 연기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제가 감독보다도 ‘진현필’이라는 인물을 더 잘 알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진현필’이라면 이렇게 안 할 것 같다거나, 진현필이라면 이런 행동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조의석 감독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물론 조의석 감독도 자기 고집이 있어서 자신이 생각하는 부분과 다르면 단호하게 안 썼지만, 자기 생각과 부합된다 싶으면 받아줬죠. ‘양면테이프’도 원래는 ‘질풍노도의 시기냐?’는 애드리브였는데 조의석 감독이 마음에 안 들어해서 다시 한 애드리브가 ‘양면테이프’였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훨씬 재미난 것 같은데 말이죠.”

영화 ‘마스터’에는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을 놀라게 할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쿠키영상’이 엔딩 크레딧 이후에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스터’의 쿠키영상은 속편을 예고한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다. 이 쿠키영상 또한 바로 이병헌이 마지막까지 ‘진현필’이라는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 조의석 감독에게 요청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마스터’가 뒤에 엔딩 부분이 좀 길잖아요. 그래서 농담처럼 조의석 감독에게 진현필의 뒷모습이 궁금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죠. 에필로그까지 나온 후에 짧게 진현필의 마지막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나갈 수 있게 하면 어떻겠냐고. 이것은 촬영을 막 시작할 즈음 제안을 했는데 4개월 이상 촬영을 하면서도 아이디어가 안 나오다가 거의 끝날 즈음에 겨우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러니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봐주세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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