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난 누굴까?’, ‘넌 누구야’라고 계속 ‘존재’에 대해 되묻는 로미오의 모습을 보며 불현 듯 고은성의 전작 뮤지컬 ‘위키드’ 대사가 떠올랐다.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다른 눈으로 보는 거지’라고 말하는 피예로의 대사처럼 이 작품 역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시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물음표를 던진다.
“비슷한 부분이 많죠”라고 말문을 연 고은성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스토리는 없는 것 같아요. 두 작품을 봐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그 안에 우정이 있고, 사랑도 있어요. 피예로도 허수아비가 되면서까지 사랑을 위해 희생하잖아요”라고 설명하며 “살아온 환경이나 시기는 다르지만 인간이 모였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는 어디를 가든 똑같지 않을까요? 새로운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 이야기들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진실 되게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생각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핵전쟁 이후’라는 상황에 내던져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인물이 서로를 처음 보자마자 불같이 사랑에 빠지고, 극한 상황에서 서로를 밀어내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하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은성은 이 역시도 “무조건 꼭 말이 되는 것만이 정답인가요?”라고 되묻는다.
“물론 밑도 끝도 없이 너무 말이 안 된다면 그건 개연성을 끌어내지 못한 배우의 잘못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무대 위에서 말이 되는 상황만 펼쳐진다면 오히려 그게 더 슬프지 않을까요? 이 지루한 삶 속에서 새로운 흥미를 찾기 위해 보는 것이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무대 위의 세상은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사실, 일상에서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의 말처럼 말이 되고 안 되고의 중요함보다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극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관객을 감동시키고 울림을 줄 수 있느냐에 있다. 그 역시 그것이 공연이 가진 존재의 이유이자 배우라는 직업이 있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어 고은성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의 무엇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거라고 묻는다면 답이 없어요.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거든요”라고 전하며 “몸이 가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마음이 가는 데는 이유가 없어요”라고 덧붙이기도.
사랑의 수많은 종류 가운데 가장 상위의 층계에 자리하는 것은 단연 ‘희생이 수반된 사랑’이다. 고은성 역시 자신보다 상대를 더 사랑하는 ‘희생’을 높은 가치로 평가한다고 말하며,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이 그 부분에 집중해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인간이 가진 수많은 감정 중에서 가장 따뜻하면서도 모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요”라고 전한 고은성은 “이 공연 안에서 대부분 캐릭터들은 ‘죽여야 해’, ‘살아야 해’ 이런 본능적인 목표만 바라보고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떻게든 인간처럼 살기 위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해요”라며 “극한의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간의 면모에 집중해서 봐주시는 것이 이 공연의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이 세상에 나 자신을 던져 희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진실한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③에서 계속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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