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와 검정 역사교과서를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사용을 원하는 학교만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고 다른 학교에서는 기존 검정교과서를 쓰도록 했다. 이어 오는 2018년에는 학교별로 국정과 검정 교과서 중 선택해 사용하도록 하기로 했다. 국·검정 혼용이 9년 만에 다시 도입되는 것으로 국정교과서는 검정교과서와 경쟁하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 제기로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중고교 단일 역사교과서 적용 정책은 3년여간의 논란 끝에 사실상 폐기됐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2017학년도에는 국정 역사교과서 사용을 희망하는 학교만 ‘연구학교’로 지정해 활용하도록 하고 다른 학교에서는 기존 검정교과서를 사용한다”며 “2018학년도에는 학교 스스로 국정이나 검정 중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는 학교에 인센티브(연간 1,000만원)를 부여하면서 사용을 유도하고 1년 동안 활용해보면서 보완을 거쳐 2018년부터 검정교과서와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모든 학교가 같은 교과서를 쓰는 국정화는 포기했지만 국가가 만드는 교과서라는 의미의 국정화는 백지화하지 않으면서 반대 여론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중고교 역사교과서 적용시기를 1년 늦추는 내용으로 교육과정을 다시 고시하고 2018학년도에는 각 학교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학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년에 사용할 검정교과서 재주문, 국정교과서 수요 조사 등 필요한 행정 조치도 신속히 진행할 계획이다. 또 국정교과서를 채택해 연구학교로 지정되는 학교에는 연간 1,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새 교육과정에 따른 검정도서 개발기간은 1년 6개월에서 1년으로 단축할 예정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좌초된 가장 큰 이유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탄핵 소추되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교육 현장에서 역사 왜곡은 안 된다”며 검정교과서들의 좌 편향성을 지적했다. 2015년 11월 국무회의에서도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며 국정화 정책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박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강한 의지를 갖추고 추진했던 국정화도 힘을 잃었다.
국정교과서의 우 편향성과 품질도 문제가 됐다. 현장검토 본이 공개되자 건국시기를 비롯해 박정희 독재 미화,민주화운동 폄훼 등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신변안전과 공정한 집필을 위한다며 꼭꼭 숨겨왔던 집필진이 공개되자 전문성과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현대사 전공자가 거의 없었던데다 ‘뉴라이트’ 계열의 우 편향 학자들이 대거 포진돼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미래는 밝지 않다. 당장 야당은 이날 교육부 발표에 대해 “국정 역사교과서의 운명을 차기 정부에 넘기지 말고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만약 내년 초에 대통령 탄핵심판이 나오고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국정 역사교과서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 차기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살려놓는다고 해도 17개 시도에 대거 포진한 진보성향의 교육감들과 한국교총·전교조 등 교원단체의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가 연구학교 지정이라는 당근을 제시했지만 과연 내년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국정 교과서가 ‘제2의 교학사 교과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민형기자 kmh20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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