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에서 비선실세 최순실 씨(60·구속기소)과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7)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일보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특검은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압수물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 블랙리스트 작성 및 전달 과정의 전모를 파악했다.
특검이 파악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메커니즘은 ‘최 씨-박 대통령-김 전 비서실장-정무수석비서관실’로 이뤄진다.
최 씨가 박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작업을 주도하면, 박 대통령은 김 전 비서실장에게 해당 구상을 실현하라고 지시해 정무수석실이 이를 작성했다. 이후 리스트는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 실무자 등에게 전달됐다.
정부 차원에서 문화계 인사 9,400여명을 블랙리스트로 낙인 찍으려 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에 따르지 않는 인물들을 걸러내 좌편향으로 모는 김 전 비서실장의 공안통치와 최 씨의 사업 이권을 위한 예산 편성·인사 분류 등이 블랙리스트의 제작 동기라는 것이다.
검찰 수사와 특검 조사에서 최 씨 주변 인물들은 “최 씨는 호불호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단체나 인물을 리스트에 포함시켰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르면 최 씨는 미르재단과 플레이그라운드 등을 통한 문화부문 사업에서 관련 장애물들을 치우는 데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취지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사실상 최 씨의 개입이 작용했는지 밝혀내기 위해 최 씨와 박 대통령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정호성 전 청와대부속비서관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또한 특검은 김 전 비서실장이 총괄하는 대통령비서실 산하 정무수석실 외에 국가정보원도 리스트 작성에 동원된 의혹을 수사 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위한 정보 수집 과정에서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사실상 ‘민간인 사찰’이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 국정원은 국가기관, 정당, 언론사 등 민간을 대상으로 한 정보활동을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 논란에 다시 휘말릴 수도 있다.
특검은 우선 조윤선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1차관을 블랙리스트 수사 선상에 올렸다.
두 사람은 정무수석실에서 수석과 국민소통비서관으로 근무하다 문체부로 자리를 옮겼다. 특검은 최 씨가 이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와 관련 없는 두 사람의 임명이 최 씨 자신의 사업은 물론, 국정농단이 발각됐을 때를 대비한 사전포석일 수 있다는 의혹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는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에도 중요한 변수로 사용될 전망이다. 블랙리스트의 존재·작성 과정을 규명하는 일 자체가 박 대통령이 언론 및 사상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헌법 위반 사안을 밝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검도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에 국한하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안을 조사 중이다. /이세영인턴기자 sylee23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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