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가드’는 1992년 개봉한 영화 ‘보디가드’를 뮤지컬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냉철하고 이성적인 보디가드 프랭크 파머와 스토커에 쫓기는 당대 최고의 여가수 레이첼 마론의 사랑을 그렸다. 아시아 초연하는 이 작품에 양파는 뮤지컬 배우 정선아, 가수 손승연과 함께 당당히 주인공에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몇 번의 뮤지컬 출연 제의를 고사했던 그가 ‘보디가드’라는 작품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8할이 ‘휘트니 휴스턴’ 때문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은 중학생인 이은진(양파 본명)이 가수라는 꿈을 키우게 한 장본인이자 첫 오디션 당시 불렀던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ll always love you)’라는 곡의 주인이었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휘트니 휴스턴의 삶을 무대에서나마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은 양파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우상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기에 뮤지컬 초짜 신인 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연습하는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매일을 안무, 노래, 연기 등을 연습하면서 숨이 턱에 차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군대에 입소한 것처럼 첫 날부터 강도 높은 훈련들이 계속 됐어요. ‘저질 체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체력이 약하다 보니 더 힘들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할 뻔도 했죠.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면서 음악연습, 춤 연습 하다 보니 이게 진짜 휘트니 휴스턴의 삶이었다면 아마 전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뮤지컬 배우라는 직업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될 만큼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여기에 ‘레이첼 마론’이라는 역할을 위해서 준비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양파는 이에 대해서 “처음에 안무가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눈빛부터 강인한 슈퍼스타의 모습으로 무대에 서야한다고 조언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에게는 그런 카리스마가 없거든요”라고 말하며 “처음부터 들은 얘기들이 ‘더 세져라’, ‘독해져라’, ‘화내라’ 그런 것들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짜증부리고 화를 잘 낼 수 있을까를 연구하다보니 나중에는 저희 회사 사람들이 힘들어 하더라고요. 자꾸 성질을 부리니까”라고 변화를 설명했다.
낯선 경험이 주는 어려움이 차곡차곡 쌓일 때 쯤 양파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옥주현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연습실에서 첫 런을 돌고 난 후 만감이 교차하던 양파는 옥주현에게 ‘10년간 이걸 했다니 네가 존경스럽다’는 내용의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옥)주현이가 이번에 정말 도움을 많이 줬어요. 극장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 떨어질 때는 뭐가 도움이 되는지. 여러 가지 정보를 많이 주더라고요. 첫 공연하기 전에도 ‘언니 잘 할 거야’라고 응원해줬죠. 정말 고맙더라고요”
처음 ‘보디가드’ 제안이 왔을 때, 양파는 오래 전 개봉했던 영화 ‘보디가드’를 다시 찾아 봤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고 자평할 만큼 가수로서 굴곡진 세월을 겪어낸 이후 보게 된 ‘보디가드’는 분명 어린 시절 봤던 ‘보디가드’와는 사뭇 달랐다. 이를 계기로 양파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행복했던 중학교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잊고 지낸 초심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다각도로 연구한 끝에 탄생한 양파만의 레이첼 마론은 어떤 느낌일까. 양파는 세 명의 레이첼 중 휘트니휴스턴이 살았던 90년대와 가장 맞닿아 있는 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손)승연이도 휘트니 휴스턴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라고 손승연에 대한 언급을 전하면서도 “그녀가 나오는 TV를 보고, 새 앨범을 발표 할 때마다 앨범을 샀던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갖고 있는 뉘앙스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90년대 가수기도 하고요”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양파는 자신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두 명의 프랭크 박성웅과 이종혁에 대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과 키스신을 어떻게 소화해야할지 마음을 졸이고 고심을 했다고. 영상 촬영을 하면서 처음으로 키스를 해봤다고 설명하던 양파는 “그날 집에 와서 맥주 한잔 했어요. 원래 술 안 먹는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바로 ‘맞아. 나는 레이첼이었지’였다. 양파는 오히려 그 이후부터 역할에 더욱 밀착될 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자신이 잘 기댈 수 있도록 도와준 두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양파는 “(박)성웅 오빠는 정말 프랭크는 이런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카리스마 있고 상남자 같은 느낌이에요”라고 박성웅에 대해 언급하며 “반면에 (이)종혁 오빠는 평상시에도 좀 유머러스한 편이에요. 그게 캐릭터에 묻어나서 조금 더 재밌고 캐주얼한 느낌의 프랭크에요. 그리고 제가 너무 체력이 안 좋아서 빌빌거린다고 장어도 선물해주셨어요”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한편, 양파는 영국에서 봤던 ‘미스사이공’이 다시 한국 공연으로 오른다면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며,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또 도전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물론, 춤이 많이 없거나 자신이 크게 민폐가 되지 않는 작품이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뮤지컬을 통해서 배운 것들이 정말 많아요. 저는 본의 아니게 활동을 뜸하게 해왔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하거든요. 이 안에서 성장하는 것들이 가수 활동에도 분명 큰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